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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80년, 76세의 헬렌과 97세의 스코트가 두툼한 장갑을 끼고 그들의 상체 길이 만한 실톱을 잡고 톱질을 하고 있다. 진보적 정치학자이자 활동가였던 스코트는 이런 자급자족의 생활 속에서 5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두 사람은 70대와 90대에도 맨 손만으로 돌집을 지었다.
스코트는 아이들의 노동에 반대하는 운동을 계기로 정치학 교수로서 몸담았던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구두 한 켤레, 모자 하나, 외투 한 벌, 넥타이 한 두개, 허리띠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삶에 있어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닌 삶의 본질이었다. 스코트는 삶을 마무리하면서도 작업복에 입혀 침낭 안에 넣어져 소나무 판자로 만든 상자에 눕기를 바랬다. 한 강연회에서는 그의 옷차림이 남루한 탓에 그가 강연자임을 모르고 표받는 이가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스코트는 그 사람을 밀쳐서 주위의 시선을 끄는 것보다는 입장료를 내는 쪽을 택했다. 그는 형식과 요란함을 피했다.
또한 그는 '나'라는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자기 손으로 흙을 퍼내어 수천 번 외바퀴 수레에 담아 나르며 만든 연못도 '우리' 연못이라고 불렀다. 그는 생활의 질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그에게 인생은 불도저의 단추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고 건설하는 것이었다. 스코트는 '자유롭고 싶다'는 헬렌에게 말한다.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그 고통을 없애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당신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까지 당신은 새처럼 당신의 자유를 써서 현재의 자극들을 충족시켜 왔다. 그러나 새들은 둥지를 틀고, 식구를 먹여 살린다.
당신은 그렇게 해본 일이 있는가. 당신은 다만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까지만 나아갔을 뿐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자유로운 동안 자유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당신은 높은 자아의 관점에서 보아 거의 의미가 없거나 쓸모 없는 활동에 자기시간을 낭비했다. 그것은 방종이다. 사람이 자기 집을 스스로 짓는 일은 새가 자기 보금자리를 만들 때와 똑같은 합목적성이 있다. 사람이 제 손으로 자기 살 집을 짓고, 자신과 식구들을 위해 꼭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생산한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를 부르듯이, 사람도 즐거움이 깊어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산다고 스코트는 탄식한다. 스코트는 막연한 자유가 아닌 육체적 욕망, 미숙한 감정, 갈피를 못 잡는 마음, 막연한 갈망과 희망,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것으로서 자신을 지배해 온 깊이 뿌리 박힌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스코트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위엄과 완전함 을 지닌 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식을 갖고 의도한 대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 협조하면서 죽음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그는 어떻게 죽는지 배우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뒤틀린 떠남 또는 꽝 닫힌 문처럼 만들 수도 있고 또는 조화로운 정점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스코트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을 돌볼 수가 없을 때 세상을 떠날 준비를 했다. 병원과 약을 멀리했던 그의 100세 생일 한 달 전 어느 날 그는 '나는 더 이상 먹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을 스스로 끊음으로써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자기 몸을 벗고자 했다. 그는 죽음의 과정을 통해 자신과 주위사람들이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길 바랬다. 그는 그렇게 어떠한 장애 없이, 숨가파하지 않고, 경련을 일으키거나 떨지도 않고 아름답고 편안하게 떠나갔다.
물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인간을 추악한 존재로 전락시키는가. 그래서 더욱 스코트와 헬렌의 '높은 삶'이 전해 주는 이런 압도감은 행복하다. 난 이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