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호하는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겹겹의 우주가 있다는 걸 안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안다.
그리고 나의 그 우주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
춥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떤 날, 그 덕에 바삭바삭한 질감의 눈이 두텁게 슬로프에 다져진 날, 해가 밝게 떠올라 저 멀리까지 쨍한 풍경이 펼쳐지는 날, 신기하게 스키가 잘 밟히고 평소보다 조금 빨라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날, 사람 없는 슬로프를 가르며 아침의 첫 활주를 마치고 바닥에 내려왔을 때 충분하다‘라는 말이 내 마음에 떠오른다. 오늘 스키는 이것으로 충분하고, 내 삶은 이런 즐거움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세상 쓸모없(어도 되)는 이 일 때문에 나에게 부과되는 모든 쓸모 있(어야하)는 일들의 무게가 별것 아니게 느껴지는 순간. 내 일상 속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