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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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개

미술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하다 제4회 전국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시나리오 부문에서 조선시대 천한 노비가 설날 천출로 태어난 신분의 굴레를 잊고 하루 동안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는 ‘문안비’라는 설날의 세시 풍속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 "문안비"로 우수상을 수상한 후 시나리오 작가 활동을 겸하는 정세진 작가의 첫 소설집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7편의 단편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7편의 장편영화를 본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이라며 원고 없이 오직 작가의 상상력만 믿고 후속 소설집까지 계약을 마칠 정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다.

♠ 목 차

1.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2. 인터뷰
3. 어쩌면 운이 좋아 우연처럼
4. 도적
5. 산 자들의 땅
6. 나를 버릴지라도
7.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나의 시간은 멈췄다

♠ 리 뷰

<겟 아웃>과 <어스>에서 보여 준 참신한 연출과 아이디어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조던 필 감독의 신작 <놉>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조던 필 감독은 코미디언으로서 성공을 이룬 후 어릴 적 꿈이었던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수상했다.

조던 필 감독의 강점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자신만의 상상력과 개성을 더해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각종 복선으로 무장해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도 K-콘텐츠의 저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참신하고 기발한 소재와 설정을 바탕으로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한 일곱가지 이야기가 시선을 확 사로 잡는다.

왜 K-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인 고즈넉이엔티에서 원고도 없는 가운데 후속 작품의 계약을 완료했는지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을 접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통상 범죄자들은 완전범죄를 꿈꾸며 자신의 흔적을 철처히 감추기 위해 매우 은밀하게 행동하며, 그러한 범죄자들은 매우 치밀하고 논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납치범은 오히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며 피해자 가족을 만나 다소 소심하고도 엉성한 면모를 보이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 피해자 부부에게 오히려 1억 원의 가치가 될 만한 은밀한 비밀을 얘기하라며 협박한다.

몸값을 전달받기 위해 각종 트릭을 동원하거나 피해자 가족을 계속 안달나게 하는 기존의 납치범과 달리 주인공은 아주 대담하면서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완전범죄에 다가가는 모습에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4. 도적

★ 최근 며칠 도서관에서 양자역학과 관련된 서적들을 뒤져보았다. 다세계 해석에 의하면 매순간 우주는 갈라지고, 우주는 하나가 아닌 무한이며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두 개의 우주를 넘나드는 중이다.

​우주의 결이 갈라지면 중첩상태로 같은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고 원자로 구성된 나 또는 중첩이 되는 게 맞지만 특이하게도 나는 두 세계에 중첩되지 않은 하나였다. <도적 中, 124~125쪽>

​2021년 750만 명이라는 흥행 성적으로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멀티버스를 통해 삼스파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인 토비 맥과이어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톰 홈랜드까지 ㅠ.ㅠ

여기서 삼스파를 이어준 것은 멀티버스를 통해서였다. 멀티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이 이론을 기반으로 스파이더맨이 동시에 여러 명 존재할 수 있게 한다.

<도적>도 이러한 멀티버스 개념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한때 인터넷 로맨스 소설 작가로 이름 꾀나 날렸지만 현재는 퇴물이 되어가는 주인공은 2개의 우주공간 속에 빠지게 된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주인공은 이를 이용해 첫사랑과 성공한 작가로 살아가고자 일을 꾸미며 두 세계를 오간다.

​도대체 저자의 이 기묘한 상상력은 어디까지 일지 궁금할 정도다.

​이 외에도 워렌 버핏도 울고 갈 투자 귀재의 신비한 능력, 행운과 불운이 반복되며 행운을 거부하고자 하는 회사원 등 놀라운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한 번 책을 들게되는 순간 순식간에 마지막 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남들은 내가 억세게 운이 좋아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지만 애석하게도 어머니는 끝내 출혈이 멈추지 않아 다음 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살아오면서 나는 수도 없이 많은 행운을 손에 쥐었고 그와 비례해 불행한 일도 많이 겪었다. 적당한 나이가 되고서야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는데, 내게 행운이 오면 곧바로 다음 날 여지없이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운이 좋아 우연처럼 中, 74쪽>

​★ 뒤늦게 잠에서 깬 은별이도 하품 한 번 늘어지게 하곤 밥상을 닦고 수저를 놓으며 해영을 도왔다. 9살, 15살 아이답지 않은 조용하고 능숙한 동작이었다.

밥상이 다 차려지자 부엌문 자물쇠가 열리며 오씨 할멈이 들어왔다. 냉큼 상을 받아들고는 평상으로 가져갔다. 평상 위엔 오씨 할멈의 손자이며 해영을 납치할 당시 현장에 있던 거구의 남자, 산돼지가 막 자다 일어난 뻗친 머리로 앉아 있었다. 이곳은 산이 없는 섬인데 갓 스무 살이 넘은 듯한 그를 왜 산돼지라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버릴지라도 中, 181쪽>

​믿고 보는 최애 작가로 등록하고 싶은 정세진 작가의 단편 소설집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를 자신있게 강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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