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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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우리들에게
한 번쯤은 자신과 이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단편집
 
제9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신 임성순 작가님의
소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여섯 편의 단편으로 묶인 소설집으로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우회적이지만
다소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 나갈 정도로
흡입력이 있으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통해
무거운 소재를 가볍게 풀어나가는 것 같았다.
 
임성순 작가님의 그의 온전한 휴가를 위해
닥치는 대로 준비했으며 빠르게 써나갔다고 하지만,
여섯 개의 작품들은 모두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단편은 ‘몰:mall:沒’
1995년 6월 부실공사로 인해 갑자기 붕괴된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단편으로 대학등록금을 위해 군 제대 후
건설 현장에서 차근차근 돈을 모아가던 주인공이
난지도에 버려진 백화점 잔해에서 시신을 찾던 중
마치 자신의 누이와 닮은 손을 발견하게 된다.
 
책을 읽은 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가 1993년 수용 한계량에
도달해 폐쇄되었으나, 삼풍백화점 잔해가 단 한 차례
매립되었으며 이후 잔해 정리 과정에서 유해가 나와
유족들의 공분을 자아낸 적이 있다고 한다.
 
주인공이 받았던 충격처럼 실제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묵직한 한 방에 뇌리에 깊이 박혔다.
유족들이 받았을 슬픔과 충격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두 번째 단편은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미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보다는
이를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자본시장의
부정한 단면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주인공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면서도
오직 자신의 재기와 성공을 위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양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는 문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다.
 
세 번째 작품은 ‘계절의 끝’
인류 멸망이 다가옴에도 그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미세먼지, 이상기후, 지구 온난화 등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지구의 생명의 점차 꺼져 가고 있는 걸 생각한다면
그저 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네 번째 작품 ‘사장님이 악마예요’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실 수 있는지
우리가 알던 악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악마의 모습을 통해 연민의 정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거기에 요즘 저출산 시대를 맞아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모습을 보며
언제쯤 이런 고민 없이 맘 편히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다섯 번째 작품 ‘불용(不用)’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열쇠공이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과정을
다소 음산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여섯 번째 작품 ‘인류 낚시 통신’
작가님께서 밝혔듯이 ‘은어낚시통신’을 패러디한 작품이나,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패러디의 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쉬웠다.
다만, 음모론이라는 주제를 통해
눈에 보여지는 것만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진실을
가르쳐 주는 짜릿함은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작가님은 독자가 소설을 읽는 것은
작가가 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작가가 쓴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보는 일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네 모습을 비춰보고
그 뒤에 감춰진 어두운 단면을
끄집어내도록 도와주는 단편집이다.
 
특히, 짤막하지만, 그 속에는
여느 장편소설에 뒤지지 않을 만큼,
탄탄한 스토리와 묵직한 한 방이 있으니
가볍게 생각하고 보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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