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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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조반나의 완전한 유년기 세계가 무너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을 떠나기 2년 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못생겼다고 했다. 신혼 시절 장만한 리오네 알토 구역 산 지아코모 데이 카프리가 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는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다. /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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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조반나는 모든 매혹될 만한 (한 것으로 보였던) 것들은 진저리날 만한 이유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상한 아버지의 비밀스런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 달리 순간순간의 정념에 솔직한 고모의 삶이 완벽한 대안이 될 수도 혹은 새로운 정신적 "아버지"가 되어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뜨거운 사랑의 도구로만 환상했던 음경에서는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순결함에 반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또한 섹스를 하며 그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기 마련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이 성장소설로 읽힌다는 데,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성장이라는 것은 의미의 완결이고 안심(安心)이라고 생각한다. 조반나는 어떤 완결된 의미도, 안심도 얻지 못했다. 그저 낭만이 섞이지 않은 그다지 흥분되지 않는 섹스도 할 만한 것일지 모른다는 관념을 일으키게 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운동하는 입자가 자유비행하면서 충도ㅗㄹ한 . 입자는 떠오르는 사실들에 대해서 인지하면서, 견디거나 괴로워하고..

나는 여전히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빠져 헤매고 있다. 내게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주려는 문장들 사이에. 실은 무의미한 문장들일 뿐인데, 진정 나의 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했는데.

나는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완결 짓지도 못했다. 내 글은 혼란일 뿐,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그저 구원 없이 일그러진 고통의 나열일 뿐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지금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이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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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나는 이러한 고통을 '고유한 나의 발견'이라는 맥락에서 긍정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재미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을 겪는 삶을 '평화를 찾는 과정'이라든지 '사랑을 얻는 과정'이라든지 '지식의 대가가 되는 과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긍정한다. 솔직히 나는 '고유한 나의 발견'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어서 이 소설이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특히 '고유한 나'를 발견하려는 사람들이 지닌 특징 - 다른 사람에 대해 별 논변 없이 '진부하다'는 가치평가적 언어를 구사하기를 나는 매우 어색하게 느꼈다. 그렇지만 조반나와 닮은 이들이라면 꽤 임파워먼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닮은 사람이 닮은 실패를 하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힘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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