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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30년 가까이 혼자 독립된 생활을 해오던 80대 앨리스 할머니는 인지능력과 신체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생겼고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들어가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심각한 질병이나 노환이 덮쳐오고 스스로 독립된 삶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는 의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김희정 옮김, 부·키, 2015)의 저자이자 외과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노령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료계 현장에서는 노인을 어떻게 케어해야 되는지에 대해 놀랍도록 무심하다며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한다.
또한 장애가 있고 노쇠한 가족을 현실적으로 가정에서 돌보는 일은 엄청난 부담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요양원에 발을 들인 순간 사생활과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 기울이기보다 안전하게 수용해 주기만을 우선시하는 자녀들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이 책에는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하고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요양원을 목표로 한 ‘어시스티드 리빙’시설과 동·식물을 기르고 어린이가 놀 수 있게 하는 등, 무료함·외로움·무력감이 가득한 요양원에 생기를 불어넣는 ‘에덴 올터너티브 프로그램’을 소개하였다. ‘어시스티드 리빙’이 확산되며 애초 취지가 변질되어가기는 했지만 적어도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의 선택을 제한하지 않고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충분히 의미 있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 한국 노령인구(65세 이상)는 총인구의 13.1%이고 2060년에는 40%대가 될 전망이다. ‘2013년 국가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0세 아동이 기대수명(81.9세)까지 생존할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6.6%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 비참한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건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숱한 치료를 계속 받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임종 직전까지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중환자실에 누워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집착하기도 한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위해 끊임없이 치료 방법을 제안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노력이 한 사람의 소중한 여생을 파괴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라는 조언은 의미심장하다.
인간다운 죽음, 적어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방법만큼은 당사자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호스피스 케어(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호스피스 케어는 치명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이 통증을 완화하고 현재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순위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쉽게 인정해 버린다고 생각해 호스피스 케어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혹은 소중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2014년 한국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13.8%이고 만족도는 71.7%라고 한다. 이용률도 꾸준히 늘고 있고 인식도 개선되는 추세지만 아직도 실제 이용률은 적은 편이다.(미국 43%, 영국95%, 대만 30%, 일본 9.4%(입원형))
의사와 가족은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장의 통증 해소인지 수술이나 치료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의 생각이 반영된 최선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이 임박하면 가족과 환자는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을 해야 한다. 그 순간을 용기 내어 받아들여야 한다.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실낱같은 희망으로 화학요법이나 임상실험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릴 수는 없다.
이 책 후반부는 척수암에 걸린 저자의 아버지와 가족이 겪어가는 과정 - 치료 선택 과정, 남은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고, 수술과정에서 무엇을 우선시 할 것인지 미리 상의하고,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 아버지와 마지막 이별을 하는 순간 - 등을 담담하게 서술하였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상처를 되짚어 볼 기회가, 또 다른 이에게는 앞으로 겪을 상황을 예습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14년 미국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31주 베스트셀러에 오른『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과 관련한 거창한 철학적 내용을 늘어놓거나 막연한 실천 방법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라는 진실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