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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수학자 - 천재 수학자 폴 에르디시의 현대 수학 여행
브루스 쉐흐터 지음, 박영훈 옮김 / 지호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일생동안 1500여 편의 연구 논문을 남긴 천재 수학자 폴 에르디시의 전기이다. 내가 이 수학자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10여 년 전 대학시절 어느 교수님으로부터였는데, 그 방대한 발표 논문의 수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의문이 났던 것은 그토록 많은 논문을 썼던 그가 과연 오래 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 내용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은 그저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네 살 때 음수 개념을 스스로 깨우쳤던 에르디시는 저녁 식사중의 대화중에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할 정도로 번뜩이는 두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어떤 수학자를 만났을 때 수년 전 그들이 만나 나누었던 대화를 중단됐던 부분에서 곧바로 이어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마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천재성만을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일정한 직업도 집도 없이 서류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수학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헤매다녔던 괴짜 인생이지만, 그의 천진난만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가 있다.
에르디시가 비록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학자일지는 모르지만, 그가 1996년 세상을 떴을 때, [뉴욕 타임스] 1면에는 '수학의 최전방에 서있는 방랑자 에르디시, 83세를 일기로 사망하다]라고 크게 실렸었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정수론 학자로서 컴퓨터 과학 및 암호론에 중추적 역할을 한 수학 이론을 내놓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500여 편의 논문을 다른 수학자와 공동 발표하였는데, 열네살짜리 어린 수학자와 공동연구논문을 출간했다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수학자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는 열네살짜리(중학교 2학년 정도) 수학자가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열네살 먹은 어린 아이와 공동연구를 할 정도로 머리가 열려 있는 학자(수학자뿐만 아니라)가 있을까?
이 책은 한 수학자의 전기이지만 그의 일생을 통해 현대수학의 흐름(정수론에 중심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을 비춰주고 있다. 몇 군데 등장하는 수학적 증명이나 추론 등은 여러 번 되새겨 보며 읽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며, 설사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데 장애물이 되지는 않으리라.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감탄하기 위해 그가 어려운 악절을 건반에서 어떻게 손으로 터치하는가를 알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My Brain is Open.'인데, 에르디시가 평소에 즐겨했던 말이라고 한다. 비록 우리가 에르디시같은 천재는 아니더라도 항상 우리의 머리를 열어놓는 것이 어떠한가? 원제목과 달리 번역서의 제목을 '화성에서 온 수학자'라고 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화성에서 온 수학자'라는 제목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다분히 판매부수를 늘릴 상업적인 이유에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원제목만큼 에르디시의 생애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은 없을 것이고, 이 책의 저자 역시 독자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My Brain is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