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국도 Revisited (특별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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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김연수 작가가 1997년에 발표했던 작품을 2010년에 다시 써서 펴낸 책이다. 앞에 나왔던 책을 읽지는 못했기에 얼마큼의 변화가 있는지는 알 길이 없고, 기본 골격은 그대로 하고 다시 썼다고 한다. 시간은 쉬지 않지만 그 시공간을 넘어선 여전히 남아있는 흔적들이 놀라웠나보다. 어쩌면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발견한 여전히 남아있던 그 무엇을 다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은 여러가지 형태로 몸을 바꾼다. 화분의 작은 이파리, 처음으로 날아오르는 갈매기,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울던 시절의 나… 그렇게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통과 즐거움과 슬픔과 행복이 남았다.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시간은 그 형태를 달리할 뿐, 어떤 식으로든 우리 안에 보존되고 있었다. (65쪽)”



이야기의 시작은 재현과 나의 중고 음반 거래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 부분은 좀 지나야 나온다. 비틀즈와 비틀즈의 노래 7번국도, 7번국도라고 이름지워진 장소와 사건과 사람들, 7번국도 언저리에서 만난 단편들과 기형도, 세풀투라 그리고 다양한 음악과 노래들이 마치 주인공 같다. 수많은 음악과 음악가들이 나오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이름들이라서 이야기를 따라잡는 것이 좀 힘들었다. 일일히 찾아보고 같이 느끼고 싶지만 부지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가 선택한 소재의 광대무변함과 해박함이 이 길지 않은 소설의 멋과 맛이다.



1인칭 화자 소설의 말하는 사람인 ‘나’는 실직한 PD이다. 이래저래 여유있어 보이는 주인공이지만 중간 쯤에 가면 돈이 떨어진다. 덕분에 영화진흥공사의 창작 시나리오 공모에 투고하고 당선도 된다. 기중 작가가 쓰는 작법론? 비슷한 것이 맘에 꼭 들어서 한 번 옮겨보자면 이렇다.

“......서점에서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 작법서를 사와서는 밤마다 캔맥주를 마시며 읽었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건 한 가지뿐이다. 세상 모든 일들은 그 무엇이든 단 한 가지만 알아두면 충분했다. 예컨대 취직한다는 건 돈을 벌기 위한 목적 하나뿐이다. 사명감을 가지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첫번째 직장에서 실수를 저질렀던 셈이다). 책을 읽을 때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게 와 닿은, 단 한 가지만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따금 아르바이트로 잡지사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내가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만화책을 보듯이 작법서를 읽어치웠다. 여러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니 역시 한 가지 작법만 머리에 남았다. ……. 거기에는 한 신에 하나씩 반드시 필요한 대사를 공들여 창작해 내되, 그밖의 나머지 대사들은 누구라도 쓸 만한 것들로 채우라는 충고가 나와 있었다. 그 사실 하나를 마음에 새겨두고….”(103쪽)



대한민국 지도상 7번국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살펴봤더니 여전히 존재하고 이 소설 덕분에 문학기행도 다녀가는 그런 곳이란다. 한 권의 소설이, 내 조국의 국토 한 모퉁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보태고 살찌운다니 이런 걸 일러서 문학의 힘이라고 한다지 아마.



소설을 읽는 내내 비틀즈가 불렀다고 얘기하는 108번째 싱글 <Route 7(7번국도)>의 노랫말이 궁금했다. 보통은 중간에 검색을 해봤을텐데 이번에는 왠일로 끝까지 미루었더니 마지막 장의 ‘덧붙이는 말’에서 깨끗이 해결됐다.

“여기에 나오는 비틀즈의 싱글은 제가 아무리 찾아봤지만 이 세상에는 없었습니다. 혹시 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길. 대신에 그밖의 음반들은 모두 존재합니다.”

있지도 않은 비틀즈의 노래 ‘7번국도’가 우리들의 주인공들에게 주는 이야기는 선물과도 같다. 입추가 지난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떠난 자전거 여행길, 사람들과 장소들은 현실과 이상의 낮꿈이고 영원과 순간의 노래이다.

......

“캬아, 거 존 노랜데. 지도 불법으로 들었다 아입니꺼. 지는 빽판으로 들었습니다. 그 노래 때메 이 산골 만디에 처박히서 선생질이나 하고 있다 캐도 과언은 아닐 낀데, 그 노래 들어보만 그래 말하지예. 7번국도에만 가면 모든 기 다 잘될 기라고, 그게 다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라예.”



“진짜 그 노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가요?”

……

“…… 그게 아니고 나도 대학생 때 무전여행하다가 7번국도에 홀딱 반했던 기라. 그래갖꼬 대학 졸업하자마자 일루 도망쳐왔부렀으니까 우리 아바이 오마니 마음고생 마이 시켜드렸지. 그런데 말입니다. 그 노래가 다 헛끼라예, 여 와가 이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되는 기 하나도 없다 이 말입니다. 아무리 멀리 와봐야 세상은 다 똑 같은 기라예. 그 노래 얘기하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애처러운 마음도 들고 그라네예. 우짠 맘을 먹고 이래 여행을 시작했는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그런 생각은 애저녁에 버리삐는 게 좋을 끼라예. 삶은 우야든둥 지금 여게 있는 거지, 어데 멀리 있는 게 아닌 기라예.……(96쪽)”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한 여자, 세희에 대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을 그것도 흥미롭게도 신비롭게도 곱게도 예쁘게도 보여주지만 두 남자 즉 나와 재현에 대해서는 좀 인색하다. 나는 실직한 전직 PD이고, 재현은 밴드 음악을 좋아하고 마음이 여리고 예리한 만큼이나 입이 거칠다. 실연을 당한 재현은 죽을려고 맘먹고는 '나'에게 비틀즈의 음반 <7번국도>를 팔았다. 죽기가 그리 쉽나, 못죽고(?) 맘이 변했다며 다시 사겠다고 싱갱이를 하면서 시작된 '그해 봄'부터의 이야기가 자전거 여행과 더불어 왔다갔다하면서 회상조로 전개된다. 마흔 개의 짦은 이야기들 제각각이 완성된 한 편의 시와 짧은 소설의 무게감이 있다.



마지막의 부제인 <짜장면>은 '사랑하는 세희에게’로 시작해서 "1996년 8월 7일 처음 쓰고 2010년 12월 24일 옮겨적다, 사랑하는 우리들이"라는 맺음말이 참 좋다.



소설 속 시나리오 투고가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나’는 기쁘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그 일이 내 인생을 몇퍼센트나 바꿀지 생각했다. 그때 생각으로는 한 삼십 퍼센트 정도? 지금 돌이켜보면 백 퍼센트였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그릇된 예측을 많이 했다"(150쪽) 흐르는 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없듯이 글을 쓰던 ‘나’ 와 그 이후의 ‘나’는 이미 긴 다리를 지났다. 그럼에도 1년간이나 공을 들여서 이 소설을 다시 썼던 마흔 살의 작가에게 스물 일곱 살의 모습도 내재해 있음을 확인하는 새로운 자전거 여행이었으리라.



책을 읽고나서는 표지를 한참 읽었다(?). Martyna Adela 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인가보다. 배경은 유럽의 어느 거리처럼 보인다. 동쪽에서 햇살이 떠 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이른 여름의 아침처럼 보인다. 차림으로는 남자와 여자인 듯해 보이는 두 젊은이가 도로의 한중간에서 배낭을 옆에 둔 채로 자고 있다. 머리를 동쪽으로 했으니 해가 뜨는 것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고 있는 바로 오른쪽 도로변에는 HOTEL의 표지판이 보인다. 바로 옆에 편안한 숙소가 있지만 거리 한복판에 드러누워 잠을 자야했던 사정이야 상상의 문제이지만 이들에게서 우리들의 주인공들이 자꾸만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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