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같은 남성
리처드 랭엄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워낙 자극적이어서 서점에서 책을 집었을때 언젠가 들어본것 같았다. 제목이 자극적인 책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대충 훑어보니 내가 아주 좋아할만한 책이라는 느낌이 왔고, 그 느낌은 정확했다.

사회생물학 논쟁이나 남녀 성역할에 대한 페미니즘 논쟁이나 그 근저에는 ‘자연vs.문화’라는 도식이 깔려 있는거 같다. 보통 ‘자연’쪽을 택하는 주장은 사회적 다위니즘,우생학,인종주의 등등 어두운 과거를 갖고있거나, 갖고있다고 공박돼어 온 반면, ‘문화’쪽을 택하는 주장은 진보주의적 입장에 서온 걸로 알고있다. 난 정치적 가치관에 있어선 항상 진보주의적 입장을 지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성에 관한 문제들에 있어선 진화론의 논리로 설명되는 것을 매우 선호해 왔다. 궂이 말하자면 ‘자연’쪽의 주장에 수긍을 해왔다고 볼수 있다.

남녀 성역할에 대한 얘기를 친구들이랑 하다보면 난 ‘남자는 가능한한 다수의 여성에게 자신의 자식을 임신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여자는 자신과 아이를 잘 양육해줄 남자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주장을 해왔고, 친구들(물론 여자들이다.)은 ‘그런 주장은 너의 남성주의적 편견이다’라는 식의 반론(내지 욕)을 해왔다. 이게 난 항상 헷갈렸는데, 내 주장(내 주장이라기 보다 우수한 과학자들의 주장을 종합한 거지만)이 과학적으로 틀리지는 않는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문제에 대해 꽤 고심을 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 특히 남성의 폭력성에 경계를 하고 있다. 남성폭력성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이 책의 첫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르완다에서의 인종학살에 대한 소름끼치는 묘사를 통해 절절히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그런 폭력이 문화나 문명에 의한 산물,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지고 고착된(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 잉여재산을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가부장제가 수립되었다라는 식의) 제도라는 식의 주장에 반론을 펼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폭력성은 보노보를 제외한 다른 유인원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뿌리깊은 습성이며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매우 날카로운 무기- 지능을 통해 강화되고 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사실 매우 비관적인 주장이다. 당장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지배가 자연스러운거고, 따라서 정당하다는 말인가?’ ‘인간은 폭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

저자는 자연과 문화를 대립적으로 보고 둘중 하나를 선택하고자 했던 사고방식을 골턴의 오류라고 부르며, 모든 오해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 지적이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만족했고 깨달음을 얻었던 점이다. 나도 자연이냐 문화냐 라는 식으로 생각해 왔던 것같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이런거다.(이 책의 중심논의에서 좀 벗어났지만…) [과학적으로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이데올로기에 제한되지 말아야한다. 또한 동시에 규명된 과학적 사실은 곧바로 행위의 지침이나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될수 없다.] 과학과 가치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내겐 아주 고마운 책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않고, 단지 동물의 행태에 흥미를 갖고있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책에 몰두해서 책장을 넘길수 있을 것이다.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 그리고 주목할 만한 보노보에 대한 얘기가 정말 흥미롭게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당연 흥미를 갖을 만한 내용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온지 5년이나 지난거 같은데 왜 아직 서평이 하나도 올라와 있지않은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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