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문명기행 1
혜초 지음, 정수일 역주 / 학고재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의 흐름에 반발짝이라도 앞서지 못해 안달복달난 사람들이
마치 백미터 달리기 경기 결과를 비디오로 판독해내듯 시비다툼이다.
이럴 때 굳이 1300년 전에 쓰여진, 그것도 많은 글자가 결락되어버려
본 기록문보다도 주석이 더 길고, 분분한 해석이 더 복잡한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은 이유는 이를테면 원시성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너무 곱게 갈아진 콩물보다도 약간은 알갱이가 거칠거칠 씹히는 쪽이
더욱 고소하고 시즐감 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교하면 좀 무리긴 하다.
여하튼 시작은 그런 마음이었다. 잘 벼러진 박물관 청동검보다는
날렵함이나 수려함과는 거리가 먼 울퉁불퉁한 구석기 돌칼을 보는 쪽이
그 칼을 쥐었던 사람들과 그 시대상이 나에게 통째로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바랑 하나 둘러매고 한발 한발 짚신으로 세계를 밟아 디뎠던 혜초와
그 여행의 감상을 앞뒤가 잘려나간 227행의 사본 문구로 전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여행한 나라들 모두 진정한 원시성에 만족스러웠다.

깨달음을 얻어가는 스님이라고는 하나 혜초 나이 당시 열여섯.
그때 나이 두 배는 되는 내가 집에 앉아 원시성 운운하고 있을 때
소년 혜초는 아비와 삼촌, 아들이 한 아내를 두는 나라 등을 떠돌며
사람의 생멸과 사람의 그리움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위대한 세계인'이기에 앞서 심신 건강한 한국인에 자부심을 가진다.

(2008.06.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