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쥐스틴 레비 / 민음사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국민학교 때 읽은 어느 잡지의 인물란에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 '앙리 레비'의 결혼식이 사진과 함께 실려진 기억이 난다. 거의 얼굴이 신랑의 반밖에 안되게 작은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으나 키는 신랑하고 비슷했던 그 신부, 철학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몰랐던 나이임에도 모델이라고 소개된 그녀의 사진이 실린 그 조그만 기사는 한동안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그 무엇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 나이가 들어 우여곡절 끝에 내가 스스로 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게 되고, 이 선택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되면 그것 중 하나가 대학교 학부 시절 그토록 쫓아다닌 여자 후배의 이미지가 그 때 본 '앙리 레비'의 신부의 이미지와 무척 닮아 있었음에 다소 놀라게 된다.

물론 레비 자신의 저서들에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실망과는 별도로 인문학자들에 대한 일종의 동경은 내 속물근성까지 포함하여 그 당시부터 키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져서, 내가 정말 철학 학문자체가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철학을 발판으로 미인과 결혼하려고 그러는 건지 헷갈릴 때면 혼자서 키득키득 거리며 웃곤 한다.

이 '만남'이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 저자는 실제로 그 철학자와 모델 사이에 태어난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딸이다. '엄마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나를 낳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엄마가 내세우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 라는 어린애 일기를 엿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시작한 이 책읽기는 너무도 깔끔한 문장과 밀도 있는 감각에 놀라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이즈'는 지휘자인 아빠 알리스와 모델이었던 엄마 오렐리앙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이다. 자기를 '야옹이'라 부르는 엄마와 샴 고양이 2마리와 함께 살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도벽이나 마약과 같은 크고 작은 범죄에 휘말려 엄마가 감옥이나 요양원에 가 있을 때는 아빠와 아빠의 새 여자친구들 집으로 돌아다니며 생활한다.

그럴 때면 루이즈는 주말마다 아빠와 엄마가 첨으로 만났다는 '카페 에크리투와르'에 가서 엄마와의 약속을 기다린다. 하지만 절대 그의 엄마는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고 펑크내기가 일쑤인 것이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리고 그녀가 오지 않으므로 루이즈는 그녀를 생각한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거치며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실제 어머니의 혼란스러운 삶들이 연민으로 바뀌게 된다. '있잖니, 야옹아,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고 착각한다는게 바로 행복이란다.' 라고 지나간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엄마에 대한 기억들은 시간의 흐름이 주는 관계의 거리만큼 시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슬픔이여 안녕'의 작가 사강의 언어를 연상시키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경쾌함은 소설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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