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 독서대(알리미 SKY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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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MDF=환경호르몬 덩어리. 아이디어는 좋으나 통 원목으로 만들어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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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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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권유로 읽었다. 성석제라는 사람, 나를 잘 몰랐고 나 또한 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귓가를 스쳐 지나는 바람처럼 이름만 몇 번 들어봤을 뿐이다. 평생 이렇게 서로 무해무득, 무지 몽매한 상태로 지내려했으나 세상이 우리를,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문체를 자주 입에 올리는 것 같던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평상시에 실제로 말도 그렇게 재미나게 할까 궁금하다.

되짚어 볼수록 가벼운 듯 진중하게 의미를 전하는 그의 글쓰기는 참으로 부럽다. 심각한 얘기를 심각하게 하게 되면 듣는 이가 혹은 그 가르침을 받는 이가 심적으로 부담을 안고 듣기 쉽다. 따라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효과랄까 바라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달성하기 어렵다. 허나 성석제 같은 경우는 이 소설의 첫 번째 단편-이 소설은 단편 모음집이다-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보듯이 줄거리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면서 마지막에 가서는 가슴 묵직한 감동까지 안겨다 준다. 그래프로 그려보자면 '살짝살짝', '사뿐사뿐' 경쾌하게 뛰다가 일순간 촥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양인데 그 곡선의 경사가 상당히 자연스럽다.

작가가 수위 조절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볍게 가볍게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확 일변하여 숭고한 감정이나 의미를 전달하려는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냄새가 팍팍 풍기는 헐리우드 영화식의 서술 기법과는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것은 약간 벗어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서술 기법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을 놓고도 생각해 볼 적에 가벼웁게, 그러나 부담을 안 주면서도 깊이 있고 편안하게 사람들을 대하며 사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삶의 태도와 글쓰기는 정말 힘든 것인데 그가 해냈다는 생각에 그 솜씨가 마냥 부러울 뿐이다. 더욱이 평소 나 자신에게는 이러한 점이 턱없이 모자라고 어느 한 쪽에만 너무 치우쳐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왔던 바,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읽다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가운데 비범하게 유지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욕탕의 여인들>) 이 문장을 '현자들은 비범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비범함이란 평범하게 사는 가운데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라고 오독했다. 원래는 세상이 비범하게 유지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때문이라는 뜻인데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꼭 잘못 읽은 것만 같지는 않다. 세상이 평범한지 비범한지는 결국 개인의 판단에 넘겨지는 것이고, 이 소설의 내용을 보면 평범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들은 모두 비범한 자들이요, 현자들이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기 때문이다. 황만근씨가 그러했고, 남가이가 그러했으며, 동환이 그러했다. 왜 그런 오독의 실수를 범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 문장이 소설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서술 기법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읽으면서 연이은 쉼표로 숨가쁘게 전개되는 문장들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글이 영상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치는구나, 글이 그대로 우리 머릿속이 되려고 요동을 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잘 모르겠고 그런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도 못 느꼈다. 그냥 우리는 아직 소설 양식의 발전 도상에 있는 중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우리 다음 세대의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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