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현산'이라는 이름을 알고나서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거의 십년쯤 된 것 같다. 오랜 동안 문학 주변을 서성이며 들은 풍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남모르게 고민하던 시절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산문집을 접했고, 이후 선생님의 글과 생각의 깊이에 꽂혀 선생님의 평론집을 읽었다. 선생님의 글을 읽은 후 우리나라에도 문학에 대한 사유를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 깔끔하고 품위있는 우리말로 표현하는 이가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한동안 나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깜냥으로 시적 세계에 대한 어떤 사유를 풀어 놓는 일이 아직은 멀고 먼 길일지도 모른다는, 조금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어쩌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 낯선 깨달음으로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지난 8월8일 선생님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접하고 한동안 가슴이 아팠다. 어느해 겨울, 아마도 <우물에서 하늘보기>가 출간되었을 즈음, 알라딘에서 주최한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통해 선생님을 처음 뵀다. 글을 통해 상상한 선생님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글과 인품이 적어도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주목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쭤보고 싶은 여러 생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하지 못하고, 수줍게 선생님의 자필 사인만 받고 그 자리를 빠져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접하게 된 선생님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걱정어린 소식들... 학계에서 정의로움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인품에 대한 에피소드들... 평론가로서나 학자로서 모두 존경할만한 어른이셨다. 언젠가 다시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했었는데... 


시의 언어는 ‘바람‘이라고 말할 때 바람 그 자체가 되려고 한다. 동물들, 특히 개미와 꿀벌들이 분비하는 페로몬은 완전한 소통수단, 아니 완전한 소통 그 자체가 된다. 꿀을 지닌 꽃을 발견한 꿀벌이 분비하는 페로몬은 동료 꿀벌들에게 꿀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페로몬은 동료들의 지각에 꿀을 향한 완벽한 욕망이 되고 꿀을 향해 날아가 꿀을 채취하려는 수행의 의지가 된다. 페로몬의 작용 속에서 꿀벌은 다른 꿀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꿀벌들을 설득된 꿀벌로 만든다. 그것은 마음을 창조한다. 이 마음의 창조는 시의 언어가 내내 수행하려던 일이 아니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