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 - 희귀병 환아 엄마의 상실과 희망의 기록
이윤지 지음 / 정미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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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숭고>

: 이윤지, 『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2026)을 읽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천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불행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구나! 하필이면 짝사랑일게 뭐람.’ 반 쪼가리 사랑은 정신이 아프므로 완전을 갈망하는 법. 집착에도 정도가 있지. 보이지 않는 칼을 들고 세 시간마다 명치를 쑤셔대는 통에 가슴에는 자랑스러운 멍울이 생겼다. 덩달아 따라온 당뇨라는 스토커. 끼니때마다 열 손가락 끝을 바늘로 후벼댄다. 덕분에 모공까지 두꺼워진 기분이다. 그러다가 혈당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인슐린을 맞게 되면서, 뱃살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구멍이 하루에 세 번씩 생겼다. 모공보다 바늘구멍이 더 많아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쯤, 멍투성이 혈관을 헤집는 링거 바늘이 차갑게 속삭인다. 애먼 생각 말고 나에게 집중하라고. 어휴. 이놈의 인기는 어쩔 수 없나보다.

 

고통은 인간을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뜨린다. 더 이상 바닥까지 갈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계속 땅이 파진다. 이러다가 맨틀과 핵을 넘어 지구 반대편까지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픈 게 조금은 나아지려나. 중력은 중심을 향하고,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중력에 의해 지금 이곳으로 다시 귀환했다가. 고통 또한 심해졌다가 나아졌다가 자이로드롭을 탄다. 기약 없는 고통보다는 고통의 완급조절이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로써 하나의 명제를 폐기하기로 했다. 몸과 마음은 별개라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마음의 고통 또한 다시 몸의 고통으로 환원되는 현상을 겪으며, 몸과 마음은 양방향. 더 나아가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여러 망상에 빠져 해탈할 뻔했던 나는 다행히 이승으로 귀환했다.

 

무너져본 사람으로서, 나는 무너졌거나 무너지는 사람에게 동지 의식을 느낀다. 분명히 말하건대 ‘동정’ 따위가 아니다. 그들에게 굳은살이 생겼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러면서도 삶에 더욱 예민해졌다는 것을 또한 잘 알아서다. 무뎌지면서 예민해지는 모순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방비로 무저갱에 추락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다 보통의 삶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일. 이 형용할 수 없는 고군분투를, 나는 입이 있지만 말할 수 없고, 손이 있지만 글로 쓸 수가 없다. 감히.

 

이런 이유에서다. 이윤지 작가의 『간호사로 사라지다 당원병 환아 엄마로 살아지다』를 읽은 것은. 니체가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 물론 그것은 은유였겠으나, 이 책은 ‘피로 쓴 글’이 이러함을 증언한다. 첫째 아이의 병을 검색했을 때 ‘10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 유전성 희귀 난치 질환’, ‘현재까지 치료 약과 수술 방법이 없음’이란 건조한 액정을 보며 작가는 피를 토한다. 간호사인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한편 ‘유전’이란 단어는 투명한 칼이 되어 작가를 난도질한다. 엄마는 만신창이가 된 채 마지막 문장을 읽는다. ‘보통 4세가 되기 전에 사망’. 그리고 2년 뒤, 둘째 아이도 같은 진단을 받는다. 그런데.

 

“물결에 휩쓸려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도 아니고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것도 아니고 겨우 발끝만 젖었을 뿐이다. 이 정도쯤이면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대체 이런 문장은 어떤 상태에 다다라야 쓸 수 있는 걸까. 환아의 엄마가 되어보니 평범한 하루가 가장 중요했다는 고백. 그리고 아이의 삶이 미움으로 점철되기보다는, 병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살길 바라는 이런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작가 마음의 표층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쁜 표지와 마음을 움직이는 책 소개 너머, 층층이 퇴적된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그 육중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초연하게 ‘희망’을 말하는 작가가. 나는 너무나 경이롭고.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 앞의 그가 너무나 눈부셔서. 깜깜한 나로서는 쳐다볼 수가 없다.

 

밤하늘에 뜬 별은 거울이 없어서 스스로 빛나고 있는 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대신 말해주려 한다. 당신의 반짝임이 세상 모든 희귀 환우 가정을 비추고 있다고.

"물결에 휩쓸려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도 아니고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것도 아니고 겨우 발끝만 젖었을 뿐이다. 이 정도쯤이면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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