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인생을 통틀어 책과 가장 친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입시에 한창 열을 올려야했던 고교시절이였다.
그 시절 친구들보다 유별나게 사춘기를 온몸으로 표현했던 나.
그때 내게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지옥과 같아서 누군가 툭 치기만해도 
오늘 내가 야자를 빠져야 하는 이유를 술술 댈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나중엔 선생님들도 거짓열외사유를 간파하셨고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를 지어가도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나는 꼼짝없이 야자시간을 견뎌야했다.

하지만 나는 열공 대신 열독을 택했고 
그 시절에 처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짜라투스트라라고 발음했다.))

벌써 2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 
지금의 나보다 더 큰소리로 자신있게 나는 세상을 다 안다고 외치던
무모할 만큼 당돌하고 미숙했던 아이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책을 다시 읽고 보니,  
분명 이책을 읽었음에도
왜  지금까지 '초인' 두 글자로만 이 책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 , 이내 이해가 됐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어렵다. 
비유와 은유로 가득하고 상징과 함축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이토록 주제가 뚜렷하고 간결한 책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명확하다.
까만 표지에 새하얗게 대비되는 꼬리를 문 뱀, 우로보로스
바로 이 책의 표지처럼 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이미지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이 세계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이르게 되리다.
창조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 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있으려면 고통과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그대들의 삶에는 수많은 쓰라린 죽음이 있어야한다."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내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고 결국 다시 책을 꺼내들었다.
다시 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헤세는 데미안에서 
니체와 함께 살며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꼇고 그를 쉴 새없이 몰아간 운명을 감지했으며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렇게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고
싱클레어의 입을 빌어 고백했다.

실로 데미안 곳곳에서 짜라투스트라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있었다.

나는 짜라투스트라의 노래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헤르만 헤세가 그랬듯이, 그의 노래에 감동받고 기꺼이 자신의 입으로 다시 새로이 불러주는 이들이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새삼 니체가 위대한 인물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끝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손에 들고
아찔한 공중에 의지할 것 없이 줄을 타는 이 광대들에게
기꺼이 친절한 역주를 제공해주신 이진우 교수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출판사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