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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책 -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물건의 역사
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 / 김영사 / 2019년 9월
평점 :
스물 한 살 처음 e-book을 경험해보고,
그 매력(호기심이었는지도)에 반했던 때가 있었다.
생각보다 편리한 디바이스, 전자책이 주는 간편함과 재미에 매료된 나는 머지 않아 종이책이 멸망하고 전자책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한 5할은 전자책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으니••• 말 다 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책은 아날로그 자체로도, 디지털 매체로도, 디지로그로도 매력적인 콘텐츠다. 지금은 종이책과 전자책은 대체재 관계가 아닌, 보완재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초의 미디어라고 불리는 라디오도 여럿의 주장과 다르게 결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팟캐스트, 유튜브와는 다른 특유의 감성을 가지고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은 아날로그를 버릴 수 없다. 인문학이 시간이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기술이 날로 발전할수록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아날로그에 가까운 것들이라고 믿는다.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며, 적당히 묵직하고 세월에 따라 종이에서 다른 향이 나는 ‘책’과 같은 부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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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책>은 그러한 책의 물성과 역사에 관한 책이다.
사진에 담을 수 없었는데, 디자인이 정말 예쁘다.
책을 볼 때 디자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표지가 박스 종이 처럼 살짝 거칠한 종이로 되어있다.
‘콜로폰(책의 뒷 부분, 책의 만듦새와 제작 과정을 기록)’을 참고하면 표지는 두꺼운 판지에 종이를 붙여 만들었다고 한다.
두께가 있고 무거운 편이다.
분량이 많아 여유를 두고 읽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이 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표지, 표제지, 본문의 구성요소들을 표시하였다는 점이다. 보면서 아, 이걸 이렇게 부르는 구나! 알 수 있었다. 책의 a부터 z까지 다루고 있는 <책의 책> 안의 실용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4부 + a 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종이, 2부는 본문, 3부는 삽화, 4부는 형태.
그야말로 책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책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다면 인터넷을 하루 종일 뒤지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 것이 더 쉽고 정확한 방법일 수 있다.
465p , 인상적이었던 콜로폰이다. 콜로폰에 대해 처음 들어봤는데(사실 치 책에서 처음 들어본 것들이 대부분이다) <책의 책>과 잘 어울리는 파트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세계사 속 ‘책’ 이라는 매체가 정말 오랫동안 시대와 작용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하드커버의 책의 모습 이전의 파피루스와 양피지로 만들어졌던 책까지 •••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애니악(논란이 있지만)이 아직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책의 각 구성요소들의 역사가 새롭기도 하고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책’과 관련된 학과를 전공해서 익숙한 내용들이 종종 보이면 반갑기도 하고, 읽는 동안 가끔씩 책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기도 했다. <책의 책>은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닐까. 길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완독한다면 책잘알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또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안다고, 책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것, 또 미래의 책의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하는데 좋은 배경지식이 될 것 같다. 책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고, 아날로그 매체로서의 책의 가치를 새롭게 상기시켜 볼 수 있는 좋은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키스 휴스턴은 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장치’가 진정으로 위대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