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와 죽음과 이별과 욕망. 익숙한 스토리와 익숙한 키워드 위에 인물은 부유한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인가? 소설은 감정의 파편을 펼쳐놓은 뒤, 그것을 연결하기를 거부한다. 설사 이것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쳐도, 이것이 무성의함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장치는 구비되어 있었어야 했다.
책이 절판된 것에 정성일의 의사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해와 달리 책에 담긴 ˝글˝은 정성일의 ˝말˝의 모음이다. 말은 필연적으로 흩어져야 하고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이 지점을 인지하는 것이 정성일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책의 장점은 경험을 기반으로 일본 요리의 특징과 의미를 성실하게 써내려갔다는 것에 있다. 여타의 책과 달리 저자는 선언한다: ˝가격과 품질은 비례한다.˝ 따라서 책에서 소개하는 가게가 다소 비싸고, 도쿄를 벗어나면 내용이 급격히 부실해지는 점조차, 책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