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 -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앤 커소이스.존 도커 지음, 김민수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월
절판


이 책은 역사와 역사학이 지닌 '문학적 특성'을 논합니다.
역사의 문학성을 둘러싸고, '역사가 과연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지'는 역사가 사이의 오랜 논쟁이었죠.
시드니 대학의 연구자 Ann Curthoys와 John Docker는 자신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중요한 논쟁사를 보다 쉽게 소개하며, 틈틈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E.H.카,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져 있는 이들의 이름은 그 저명함만큼이나 징글징글합니다.
역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둘러싼 논쟁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임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인 줄 알았는데, 연구서이니만큼 535 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두 저자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부터 최근의 역사전쟁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역사의 문학성 논쟁의 근거를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학문적 경계를 넘어 상세하게 제시한 점이 특징입니다.
그 누가 읽는다고 해도 지적 쾌감을 충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문학성에 대한 기원은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역사학의 창시자이자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역사가의 의무를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나 전달에 두지 않았죠.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역사』에서 "내 의무는 내가 들은 모든 것을 전하는 것이지만, 들은 그대로 전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역사서는 항상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실하게 기록하는 거라는 믿음을 깨기에 충분하면서도 명료한 말입니다.

반면 투키디데스는 어떨까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항상 비교되는 역사가죠.
헤로도토스가 정치부터 종교, 성문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을 다룬다면, 투키디데스는 정치외교사에 집중합니다.
투키디데스의 유명한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전쟁과 비극에 관심을 둡니다.
또한 헤로도토스가 복합적이며 유한 설명을 취하는 것과 반대로 다분히 고압적이고 또렷한 방향성을 취하고 있죠.
그러나 두 역사가는 공통적으로 '역사의 문학성'을 드러냅니다.
이 책에서는 헤로도토스는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 투키디데스는 비극에 취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사람은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역사적 해석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두 역사가 모두 철저한 고증에 입각하면서도 '역사가' 내지 '나'의 목소리를 삽입하는 것을 잊지 않죠.
개인적으로 2장은 역사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역사학은 본격적인 '근대 역사학'의 시발점입니다.
지금의 역사적 연구방식은 이 시대부터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죠.
랑케의 역사학은 '전문성'과 치밀한 '과학성', 이 두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굉장히 엄격한 사료고증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서술해야 했고, 역사는 더이상 '문학적'이지 않아야 했습니다.
랑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전문역사가'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철저한 자료조사로 사실을 수집하고, 정치적 논평과 권력유착을 초월하여 학자적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했지요.

그러나 곧이어 랑케의 역사관에 대한 역사학계의 검토가 이루어집니다.
과연 '과학적 역사'가 가능하냐는 것이며, 다시 말하자면 그의 '비개성'을 비판하는 목소리였죠.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학자로 부르크하르트, 프리드리히 니체, 액턴을 소개합니다.
이 중 부르크하르트와 액턴이 랑케의 제자란 점은 제법 유쾌한 사실이죠.

이후 크로체, 베커, 비어드, 아렌트 등의 여러 역사가들의 견해와 입장을 통해 논쟁의 흐름을 설명합니다.
자료의 엄격한 검증으로서의 역사, 문학적 형태의 역사 사이의 혼돈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역사의 이중성 가운데 어느 한쪽이 강조되거나 때로는 배타적인 양상을 띄었습니다.
20세기 중반은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 혹은 악용되는 시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 히틀러의 나시즘, 스탈린의 공산주의,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원폭투하 등등
여러 나라에서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고 정신을 무장시키기 위해 역사를 애용했죠.
근대적 민족주의라는 웃기는 개념이 등장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다음에는 모든 역사학도를 미치게 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내러티브 등이 등장하지요.
포스트모더니즘과 내러티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후반부에 역사적 문제를 둘러싼 역사가들 사이의 의견불일치로 일어난 '역사논쟁'을 살핍니다.
히로시마 원폭을 둘러싼 논쟁, 난징대학살 논쟁, 태즈메이니아 정착촌 문제의 논쟁이 그것입니다.
역사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힌 동시에 역사를 다시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마지막으로 세계사, 지구사, 환경사 등 현재진행형 역사문제를 소개하는데, 이부분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며
저는 역사는 문학적이며, 아무리 객관을 추구해도 객관을 빙자한 주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객관적'이란 말을 우리가 자주 사용하지만, '객관'이란 이름의 권위를 등에 업은 게 아닐까 싶죠.
역사가는 최대한 자료를 중심으로 합리적인 해석을 하되, 그 문학성과 인간심리를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역사는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인간의 감성도 들어있거든요.
가끔은 천재적이고 드라마틱할수도 있지만, 경거망동이 개입하기도 합니다.
비단 역사가가 아니라도,모든 일들을 대할 때 이런 신중하고도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할것입니다.
간만에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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