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악어가 오딜을 삼켰대!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02
마리 도를레앙 지음, 안수연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1. 원제인 'Odile?'이라면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었겠다 싶어요.
한글 제목이 조금 아쉽네요.

오딜은 악어 속으로 들어간 걸까요? 아니면 악어가 오딜을 삼킨 걸까요?

오딜을 삼킨 게 오딜?
오딜은 악어 배 속에서 자기는 괜찮다고 하네요.
악어 속에 들어간 오딜의 태도를 보니, '크로크오딜(악어)'이 오딜을 삼킨 것으로 보기 힘들 것 같아요.^^;

오딜의 부모가 데리고 다니는 오딜(악어)이 오딜?
오딜의 부모는 예전처럼 행동하려고 오딜(악어)을 데리고 외출했어요.
사람들은 오딜이 오딜('악어 아이')로 변했다고 생각했어요.
소녀가 악어로 보일 수 있을 만큼 변화가 심한 때가 청소년기죠.

2. 오딜은 오딜 배 속에서 목도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데요.
걸을 필요도, 이 닦을 필요도 없고, 밥을 다 먹지 않아도 되고, 자기 물건을 정리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런 오딜을 대하는 오딜의 부모님은 몸시 지쳤어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자기만의 시간과 자유를 원할 거예요.
이전처럼 엄마 아빠가 하자는 대로만 하는 나이는 지났죠.
자기 생각이 있고, 그것이 인정 받기를 원하는 십대를 대하는 부모는 피곤하겠지요.

하지만, 오딜의 부모처럼 오딜의 자리를 넓혀주고, 그동안의 습관을 바꾸고 기다려 준다면 다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 겁니다.

3. 오딜은 자기 속에 있는 본성을 끌어내었다고 할 수도 있겠고요.
오딜이 오딜(악어) 속에서 성장의 시간을 보냈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오딜이 자기만의 자유 시간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겠고요.
불안정한 감정 기복의 상태를 벗어나 좀 더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이런 복잡한 심리상태 때문에 "오딜의 기분을 이해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당사자 오딜도, 부모도 잘 모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겁니다.

'적당한 거리'는 딱 정해진 건 없다고 생각해요.
케바케라고 할까요?
사람도, 상황도 다른데 어떻게 일률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말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굳이 말한다면, 시선과 관심을 끊지 않고 말은 아끼는 거예요.
기다려 주되, 언제라도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는 거리.

4. 자꾸 부모의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려 하면 아이들은 언제 오딜 속으로 들어갈지 몰라요.

오딜은 서커스단에 가서 또 하마 앞에 섰어요.
불안하죠?ㅋ

오딜이 서커스단에 갈 때엔 기분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하마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오딜과 떨어져서 다른 것에 관심을 집중하는 부모님이 보이네요.
그러면 또 언제 오딜이 자기만의 공간으로 숨어버릴지 모른다고요.

시선과 관심을 거두면 안 돼요~~

* 타툴루 아동문학상 수상작으로, 청소년기, 사춘기 아이들에 관해, 또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나누기 좋은 책입니다.
작가의 '딴생각 중'도 같이 보면 좋겠네요.

안나 회굴룬드의 '오직 토끼하고만 나눈 나의 열네 살 이야기'도 참고하면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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