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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ㅣ 뚝딱뚝딱 누리책 22
Raphaele Frier 지음, 줄리앙 마르티니에르 그림, 이하나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20년 10월
평점 :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
(라파엘 프리에 글/ 줄리앙 마르티니에르 그림/ 이하나 옮김)
월요일.
블레즈씨는 잠에서 깨 슬리퍼를 신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발이 털로 뒤덮여 있는 거예요.
그래도 회사에 가야 하니까 서둘러 집을 나섰어요.
블레즈씨는 걱정거리를 잊기 위해 일에 더욱 집중했어요.
끔찍한 날을 보낸 블레즈씨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내일이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잠이 들었어요.
화요일.
블레즈씨의 하체는 온통 털로 뒤덮였어요.
그래도 회사에 가야 하니까 서둘러 회사에 갔어요.
블레즈씨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블레즈씨는 정말 괜찮아졌을까요?
ㅁㅁㅁㅁㅁ
1. 블레즈씨는 원래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곰이었을까요?
금요일.
블레즈씨는 완전히 곰으로 변하고 나서,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 말했죠.
숲속에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는 블레즈씨는 자기가 살던 곳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블레즈씨의 집에 식물들이 많고 초록색 투성이인 것이 힌트인 걸까요?
어쩌면 계속 외면하려 했었던 자신의 정체성이 발현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회사에서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되는 일이 별로 없죠.
사실 모든 게 엉망이었습니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 암시를 해보지만, 결코 괜찮아지지 않다가, 완전히 곰이 되고 나서야 괜찮아졌다고 합니다.
곰이 사람으로 살려니까 힘들었을까요?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블레즈씨는 도시생활과 맞지 않았습니다.
2. J.슈타이너의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에서는 공장으로 강제취업된 곰이 나옵니다.
숲이 개발되면서 공장이 세워졌죠.
그 숲에서 겨울잠을 자던 곰은 공장의 노동자로 살게 됩니다.
자기는 곰인 채로 있고 싶지만, 사람들이 자꾸 자기를 곰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동자로서의 삶을 강요합니다.
곰은 너무 졸려하다가 결국 공장에서 해고됩니다.
다행히도 숲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책의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사람처럼 살아야했던 곰과 자기가 곰인 것을 계속 억누르면서 살아야 했던 블레즈씨.
둘 모두 숲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겁니다.
3. 블레즈씨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경을 썼습니다.
안경을 쓴 것이 진짜 사람을 보여주는 걸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편견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걸까요?
혹시 안경을 끼고 봐야 블레즈씨가 곰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요?ㅎ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곰이라도 이용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나타내는 걸까요?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안경이 필요하다면 블레즈씨에게도 안경이 필요했겠다 싶습니다.
4. '블레즈'는 파스칼의 이름이죠.
우연의 일치는 아닌 듯 생각됩니다만...
파스칼은 인간이 자신과 대면할 때,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알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블레즈씨는 자기 자신과 대면했고, 자신이 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살 수 없는 곰이라는 걸 외면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숲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블레즈씨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진 상태인 것입니다.
블레즈씨는 자신을 대면하고 "위대한" 곰이 되었습니다.
5. 파스칼은 "자신을 잊고 일시적인 행복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제 생각엔 이 방법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기보다,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에 더 가까워지기에 인간을 괴롭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들에게서 이런 신경 쓰는 일을 모두 빼앗으면 된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블레즈씨는 "회사에 가야 하니까" 자신을 직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번아웃' 되기 전에 자신을 대면하고 어떤 존재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