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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고백
최승현 지음, 서민정 그림 / 비온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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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의 단편소설집 부재중 고백(최승현 / 비온 후 / 2023)을 어제에 이어 오늘 다 읽었다책을 펼쳐든 순간 우선 좋았던 것은 140 페이지의 비교적 얇은 두께에 책장 속 활자도 12pt쯤 될 만큼 시원시원하여 기존의 책들에 비해 활자 읽기의 피로감이 훨씬 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도 비교적 쉽게 넘어 갔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내용까지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책은 모두 짧지만 묵직한 여운을 주는 다섯 편의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을 쌓아가고 있는 남자들의 세계를 그린 완벽한 심사’, 자신이 선심으로 돌보던 방문 돌봄 어르신의 악마적 실체를 식물인간이 되고서야 깨닫게 되는 요양보호사의 심리를 그린 당신 뜻대로’, 이 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읽었던 부재중 고백’, 한 가정을 책임 진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 나이 들어가는 이 시대 여성들이 겪는 혹은 겪을 법한 심리적 불안감을, 다른 장과 달리 유일하게 희미하게나마 웃음기 있게 그려 낸 어느 미래’, 대학 내의 성추행 사건을 둘러 싼 남성(교수)사회의 추악한 관계들을 밀도 있게 다룬 형님까지, 읽는 내내 책의 전반에 흐르는 섬뜩함과 긴장감에서 놓여 날 수 없었다. 이 책이 지목하는 사건들이 오래 지난 옛 일이거나 아득히 먼 곳의 일이 아니라서 섬뜩했고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이나 강건한 문체임에도 소설적 재미가 상당하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심사형님에서는 조직 내 남성위주의 계급문화에서 아마도 그녀가 직접 겪었으리라 짐작되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기억이 묻어난다. 완벽한 심사에 등장하는 ‘X’형님에 등장하는 영진’이 놀랄만큼 닮아 있는 것도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화려한 수식이나 망설임 없이 전개되는 상황의 속도감도 좋았고 각 편의 등장인물들이 그려내는 즉물적인 풍경도 하루 만에 다 읽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작가가 아닐 뿐더러 오랫동안 독립큐레이터, 미술평론가, 미술사강사로서 문단보다 화단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꼭 등단해야만 작가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 때문에 이 보석 같은 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읽힐 가능성이 그리 밝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우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독서를 사랑하는 일반 대중들의 밝은 눈이 부디 이 책을 많이 찾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회사에서 그녀는 그저 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선택해 주면, 그냥 그 사람을 데리고 조용히 일만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건의사항을 전달하면 불평불만으로 여겼고, 문제를 제기하면 감정적 싸움으로 여겼고, 개선을 논하면 회사와 지방문화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 - P16

‘나르시시스트의 딸에게도 ‘어떤 입장’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세상 끝까지 숨어들어 가고 싶을 뿐이다. 존재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이르면,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남아 나를 즐겁게 괴롭히고 있는 저 수많은 거친 이물질들도 사라질 테지.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아픈 심장을 움켜쥐어가며 도리를 행해야 하는 주체가 아닐 테지. 도리의 감옥에 갇혀 자신의 상처조차 돌보지 못하는 굴욕감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 테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대상의 발아래에서 그저 무릎 꿇은 자세로 살아가는 고통의 세월은 나의 시간이 아닐 테지. 불의를 불의라 밝히지 못하는 비굴함은 나의 태도가 아닐 테지.’ - P87

‘혹여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 어느 미래가 갑작스러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온다면, 내가 아무런 손을 쓸 수도 없는 그 순간이 지금에라도 불현 듯 닥쳐온다면, 무엇이 나를 가장 낯부끄럽게 할까. 죽음이라는 마무리는 어쩌면 편안할지 모른다. 결모 두 번 다시 깨어날 일도, 누구와 대면하게 될 일도 없을 테니까. 낯부끄러움은 비자주적인 내게 생이 남아 있을 그때, 아무런 변명조차 할 수 없는 그때, 얼굴 붉힘조차 숨길 수 없는 그때 찾아올 것만 같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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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뿌리들 소운 이정우 저작집 5
이정우 지음 / 그린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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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보기에도 만만찮은 두께를 자랑하는 소운(消雲) 이정우 선생 개념-뿌리들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그의 철학 강의를 엮은 것으로 우리가 아는 철학들을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철학이 어려운 것은 중요한 개념과 관점에 있어서 학자들마다 각각 다른 사유(문제의식)와 논증을 펼친다는 것이다. 또한 한 개념을 알기위해 선행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념-뿌리들은 철학의 근본적인 사유의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개념을 설명하고, 철학적 사유의 궁극적인 아포리아들이 무엇인지 탐구해 철학의 깊이와 의미를 알게 해 준다.

소운 선생은 서문에서 우리를 천천히 그리고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국) 개념이라고 강변하며, ‘일상의 언어이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을 그 역사적 연원과 철학적 구조에 입각해 전반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입에 올리는 개념의 문제에 대한 개념을 정리 할 수 있어 좋았다. 철학서가 소중한 것은 인간이 쌓아올린 빛나는 수많은 지적 자산들, 역사와 인간의 관계, 심지어 지금 우리의 삶들이 얼마나 가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주와 인간의 본질 앞에)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가슴과 이성으로 깊이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이 삶과 자연 앞에 될수록 겸손해 져야하는 이유다.

 

플라톤의 ‘공산주의‘(앞서 플라톤은 지도자들의 자격으로 재산은 물론 처자까지도 공유하는 ‘공산주의’를 주장한다. 그래야만 사리사욕을 초월해서 오로지 폴리스만을 생각한다는 것인데, 재산공유는 일부 재산 ‘기부’로 이해 할 수 있겠지만 ‘처자’까지는 당시 아테네의 시대상을 이해한다 해도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 아마도 지도자는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일 텐데 가족이 없어도 지도자의 머리가 범인으로서도 이해 불가의 수준으로 아둔하다면 그것 역시 헛된 바램이다. 박근혜를 보면 알 수 있다 )는 그것을 일반적인 수준으로 적용하더라도 모든 것이 익명이 될 터인데, 그런 익명적 사회에서는 노력도 애정도 감소 할 수밖에 없다.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이 인간을 움직인다. 사람들은 공유되고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본문 중

유럽 선진국의 경우, 관료가 우리 돈 500만 원 정도의 뇌물만 받아먹어도 당장 그 직책에서 물러나고 엄히 처벌 받아야 한다. 심지어 사회와 자기 양심의 따가운 질책을 견딜 수 없어 자살하기까지 한단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몇 억, 몇 십억을 받아먹거나 횡령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런 것이 바로 그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에토스의 차이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사회에 성인군자나 사악한 인간이 얼마나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회의 평균적인 분위기다. 그 사회의 대중이 가지고 있는 평균적인 에토스가 그 사회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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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2
아돌프 히틀러 지음, 이명성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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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보수라 참칭하는 역대 정권들은, 생각해 보면  참 세련된 프로파간다를 구사 할 줄 아는 집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언론, 연설, 매체를 적절히 이용한 프로파간다로 (순박한 건지 생각이 없는건지 모를많은 어르신들의 일방적 지지를 받아왔고 보수층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굥 정권의 언론 플레이는 전과 다르다. 별 먹고 싶지도 않은 당근을 내밀며 먹든지 채찍을 맞든지 선택하라 무섭게 강요한다. 이들이 언론을 다루는 방식은 과거 2차세계대전 직전의 히틀러 식 악랄한 대 국민 선전 선동이 연상된다

출범부터 지금까지 굥정권의 통치스타일과 대국민 프로파간다를 보고 듣자면 고집세고 막가파식인 대통령과 달리 대중들의 본능적인 심리를 읽을 줄 알고 그쪽을 자신들에 유리한 쪽으로 굴릴 잔머리를 가진 뱀같이 간교한 참모 몇몇이 있어 히틀러의 나의 투쟁속의 선전 선동술을 그대로 베껴먹고 있는 것은 아닌 가, 가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히틀러의 악서(惡書) 나의 투쟁에는 그가 당시 국민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국민들을 선동했는지가 비교적 소상하고 신랄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한 광인의 잘못된 역사의식에서 오는 허황된 집념을 (비록 한라 할지라도) 의식없이 찬양하는 국가의 국민들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그런 국가가 되지 말란 법이 없겠기 때문이다.


"대중은 지능이 높지 않고, 너무 쉽게 잊는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선전이 되려면 제한된 몇 가지 논점만을 다루어야 하고 이를 슬로건으로 만들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이해하도록 반복하여야 한다. ... 빈틈없는 방법으로 선전하기만 한다면 천당을 지옥이라고, 또는 지옥을 천당이라고 믿게 만들 수도 있다. ... 항상 인간의 감정에 호소해야지, 진위가 의심스러운 이성에 호소하면 안 된다. ... 선전은, 포스터가 예술성과 상관없듯이 과학적 정확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 많은 수의 대중을 목표로 할수록 지적 수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나의 투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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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글 알베르 카뮈 전집 19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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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20세기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문맹에다 지독히도 가난한 미망인이었다. 카뮈는 젊은 시절 끔찍이도 축구를 좋아했으나 폐결핵을 앓던 환자이기도 했다. 최후의 대작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면서 한창 기대를 모으던 그는 인생의 절정에 홀연히 자동차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알베르 까뮈젊은 시절의 글들은 몇 번을 읽어 봐도 마음으로부터 깊은 공감과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빛나는 문장을 정신없이 읽는 동안 때때로 온 영혼이 다 해체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어떤 현기증 나는 도피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그 도취감은 잠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인 것이다. 왜소함에서 벗어나 자신에 의하여 창조되고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보다 순수한 어떤 세계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비속한 욕망과 역겨운 식욕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음악에 대한 시론」 중

"용감해서가 아니라 덤덤해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솔직해서가 아니라 어리석어서 거짓말을 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 집의 문턱, 내가 다시 돌아와 선 그 궁륭 아래서, 어둠이 미묘한 하나의 세계를 삼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나의 내면에서 어떤 젊음이 스스로 피하고자 했던 압박과 스스로 갖지 못했던 빛을 열렬히 원하면서 반항하고 있음을 믿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무어인의 집」 중

"고통 없이는 사랑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질 때, 단순하게, 고통으로 더 풍부해지고 우리의 불행이라는 감정으로 거의 행복해진 상태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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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
하상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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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하상일의 평론집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실천문학사, 2007)2000년부터 논쟁이 되어 온 한국 시단의 소위 미래파논쟁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 낸 것으로 마냥 따르기에 일견 무리가 있으나 문학가들 뿐 아니라 현대미술판의 작가들에게도 새겨들으면 좋을법한 문장들이 많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새롭다면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를 말해야 하고, 그 새로움에 대해 분명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비평이 견지해야 할 뚜렷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깥의 삭제와 폐색의 실감’을 ‘기성의 가치나 관점에 대한 전면적 회의’로 읽어내고 싶은 것은 비평가의 욕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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