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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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지 않아도 되는 책, 아무 데나 펼쳐 놓고 읽기 시작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책, 관심이 가고 궁금해 하는 곳부터 읽어도 되는 그런 책이 갈매나무를 통해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탐구와 감성적 몰입을 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언어를 옮기면서 언어 너머의 문화도 나르고, 행간에 누운 정서와 태도도 나르는 번역가 이재경의 물체 주머니에 담김 30개의 사물들을 수집한 기록을 통해 사물 뒤편에 쌓인 맥락을 탐구하는 인문 에세이이자, 저자만의 내밀한 취향과 감성을 고백하는 일상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과 새로움을 안겨줍니다.

제일 먼저 소개하는 오브제는 '팔러 체어'입이다. '팔러'는 응접실을 뜻하는데요, 원래는 중세시대 묵언 수행을 원칙으로 하는 프랑스 수도원에서 부득이 대화가 필요할 때 따로 지정된 방을 '팔러(parloir)'라 했고, 이 단어가 속세로 나와 귀족 저택에서 사담과 사교가 꽃 피는 방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등과 엉덩이를 푹신하게 받쳐주는 의자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팔러 체어' 랍니다. 

'팔러'는 프랑스에서 종교와 기관의 냄새를 풍기다가 영국으로 와서 상류층의 과시 풍조를 대표했고,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대서양을 건너며 인종주의와 특권의식의 꼬리표를 달았고, 문화사적 맥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는 사물화된 팔러의 개념만 접수되면서 빈티지나 앤티크와 동의어로 인색되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초록색 유리 갓과 황동 받침대에 쇠줄 스위치가 달린 탁상용 전등인 '뱅커스 램프'는 1909년 미국 전등 회사가 '에메랄라이트(Emeralite)라는 이름으로 출시를 했는데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은행업 종사자를 비롯해 장시간 장부를 모거나 계산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녹색 바이저(green eyeshade)를 쓰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초록색 갓이 달인 전등을 '뱅커스 램프'라 부르게 된 데에는 이렇게 시력 보호용 바이저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지요.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텀블러'(tumbler)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있을 텐데요, 원래 텀블러는 밑바닥이 넓고 편평한 잔을 통칭하며, 주로 위스키나 보드카를 얼음 위에 부어서 온더록스(on the rocks)로 마실 때 사용하는 잔이었습니다. 이제는 술보다는 커피 용기로 인식된 데에는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를 위한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한 사람이 한 개의 텀블러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이는 자칫하면 환경 보호와 개인 위생에 더블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거기 등장하는 사물들 뒤의 사연까지 모두 합쳐서 완성되며, 사연까지 다 알아야 다 읽는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사물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며,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쓰여지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해주어 읽는 내내 새로움을 알아가는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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