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
리나 구스타브손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

야들야들 베이컨, 국민고기 삼겹살, 아이들의 밥반찬 햄, 윤기 좌르르 족발, 누군가의 제삿상에 올려지는 머릿고기, 얼큰한 김치찌개에 퐁당 들어가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이러한 제품들의 원 재료는 바로 돼지입니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돼지고기가 우리의 식탁까지 어떻게 오는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갈매나무를 통해 출판되었습니다.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수의학을 공부하며,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물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도축장 일에 지원한 스웨덴의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생생한 도축과정을 담으며,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진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간에 이르면 돼지들은 더 이상 앞으로 가지 않고 버틴다. 걸음을 멈추고 왔던 길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미 갇혔다. 기계로 움직이는 자동 벽이 내려와 뒤에서 돼지들을 앞으로 떠민다. 기계를 만든 제조사는 이 방법이 사람과 돼지의 접촉을 줄여 혹시 모를 동물학대의 소지를 줄일 수 있으니 동물복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스트레스를 받은 돼지들은 벽이 다가오자 완전히 패닉에 빠진다. 녀석들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는 비명을 지르면서 갑자기 서로의 등에 올라탄다. ...문이 철컥 닫히고 돼지를 실은 칸이 가스실로 내려간다. 그러면 놀이동산의 대관람차처럼 금방 다시 빈칸이 새 탑승객을 태우기 위해 내려와 멈춰 선다"(p.21)

"가슴이 뜨끔한다. 내가 지시를 내렸구나!"(p.35)

"견디기 힘들지만 참아야 한다"(p.36)

생명의 죽음으로 상품이 되는 도축장은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의 채식주의자가 견디기 쉽지 않은 곳입니다. 스웨덴 국립식품청의 수의직 공무원이 된 그녀의 일은 동물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것인데, 농장에서 실려온 동물들이 아프지 않은지, 식품으로서 결함이 없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무 첫날부터 그녀가 목격한 것은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살처분 당하는 돼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취-방혈-탕박 등의 도축 공정을 거치며 고기가 되는 현장에서 마주친 잔혹한 상황들을 낱낱이 일기로 기록합니다.

"발이 절로 도축작업장 쪽으로 간다. 오늘 여기서 3천 개의 생명이 소멸할 예정이다. 동시에 나는 오늘 퇴근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가장 불쾌한 깨달음 중 하나이다. 이제는 나마저 여기에 적응했구나!"(p.161)

책은 독자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생생한 도축장의 모습을 눈 앞에 펼쳐보이며, ‘동물이 인간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것이 마땅한지 신중히 되묻고 있습니다. 과연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까요? 책은 대규모 공장식 축산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해결책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다만 저자가 버텨낸 시간을 써내려가며 공감을 청할 뿐입니다.

"최대의 불안과 공포, 그렇다. 바로 그것을 나는 보았다"(p.208)

동물복지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스웨덴조차도, 도축장은 고통스러운 죽음의 현장일 뿐입니다. 동물보호에 진심이었기에 섬세하게 문제를 건의하고 설득하며 가혹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 왔지만,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일상은 버겁지 않았을까요? 저자의 사직으로 마무리되는 이 기록은 마지막까지 죄책감과 미미한 희망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며,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같은 날들을 기록하며, 동물이 인간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하나뿐인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닌지 곱씹어보게 합니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절실하고도 뜨거운 논의, 즉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데 강렬한 영감을 던지며,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딜레마의 고민을 안고, 스스로 공범이라는 죄책감과 자기 경멸, 슬픔, 무력감이 혼재되어 주저않을 수밖에 없는 저자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 합니다. 공장식 축산의 피할 수 없는 동물학대와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고기가 한때는 생명이었다는 사실, 동물이 인간의 식재료이기에 앞서 우리와 똑같이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냐고 물으며, 모든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에게 '우아하게 죽을 권리'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