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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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

이정록

바람이 거세어지자, 자장면
빈 그릇을 감싸고 있던 신문지가
골목 끝으로 굴러간다. 구겨지는 대로
제 모서리를 손발 삼아 재빠르게 기어간다
웅덩이에 빠져 몸이 다 젖어버리자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온몸을 바닥에 붙인다
스미는 것의 저 아름다운 안착
하지만 수도 없이 바퀴에 치일 웅덩이는
흙탕물을 끌고 자꾸만 제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먼 반대편으로 뚫고 나가려는 웅덩이에게
흙먼지와 신문지가 달려가고
하늘이 파스처럼 달라붙는다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손발을 끄집어내어
허방을 짚고 나올 때까지, 삶이란 스스로
지푸라기가 되고 신문지가 되어 굴러가야만 하는 것을,
흙먼지를 밀치고, 파르르
제 몸을 들여다보는 하늘의 눈


🦋이 시가 훅 들어왔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를 오르고 김광석거리를 갔다.
오가는 차안, 나는 이정록의 <의자>시집을 읽었다.
그렇게 <웅덩이>가 내게,

시도 어느날 훅 내게 온다.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손발을 끄집어내어 허방을 짚고 나올 때까지’
처음에는 이 문장이 날 사로잡았고,
다시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신문지가, 웅덩이가
그려지듯 읽혀졌다.

내안의 웅덩이를 생각했다.
내가 만들어낸 웅덩이에는 무엇을 담고 견뎌내고 있는지,
웅덩이가 손발을 끄집어내어 허방을 짚고 나와버리고 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시우안미정
#읽고쓰고걷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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