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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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정끝별의 해석☆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 가며 밥을 먹여 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

■2연에서였다.
눈이 반짝 떠진 것은!!!

시의 시작이 너무나 평범해 방심하고 있었다.
어떤 긴장도 하지 않은 채,
시를 보고 있었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툭‘던질 수 있는 저 한마디가 시가 되었다.
꽃,
열매까지도 의자에 앉아있는 거라고
억지(?)를 부린다.

참외밭에 지푸라기를 깔고
호박에 똬리를 받친다는 부분을 읽었을
그제서야
꽃, 열매, 의자부분의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을 갈무리한다.
산다는 것,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라고~~~~

방심으로 몰고 가다
어김없이 강타를 날리며
내 심장을 헤집고 돌아나간다.

시를 본다.
시를 읽는다.
시를 만난다.
시를 대한다.
시를 품는다.
시를 읊조린다.
시를 외운다.
시를 담는다.
시를 만진다.
시를 보듬는다.
시를........

오늘은 이 시가 날 ‘툭‘ 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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