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 최신개정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일궈놓은 삶의 흔적들을 되돌아보며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이 세상을 해석하고 바꿔 나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믿음과 삶의 철학을 비난만은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맹롤랑은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놓쳐버린 15분의 줄거리를 찾기 위해 신앙을 가지고 철학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P296).

이어령 교수가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삶의 평생에 걸쳐서 지성을 추구해온 노(老)학자의 회심기입니다. 이화여대 교수로, 문학사상 주간으로, 문화부장관으로, 88올림픽을 기획하고, 새천년 준비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많은 직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분이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일관된 저자의 모습은 겸손함입니다.

학문적으로 세상적으로 큰 업적을 이룬 대가(大家)가 절대자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는 모습은 진정한 ‘겸손’에 다름아닙니다.

이어령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생각을 했음에도 자신의 삶의 수준은 아직도 비루하고 남루한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본원적인 고독과 상처를 안고 살아감에도 그 고독과 상처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깨달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수 스스로도 문학을 해온 이유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때문이라고 했는데, 일생을 걸쳐서 그렇게 쌓아올려도 결국에는 인간의 본원적인 고독은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을 합니다(PP306-307).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는 심경과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절제있는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종 경어체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고백하듯 쓰인 문체에서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아름다운 문학적 비유와 표현으로 자칫 딱딱해질 법한 신앙적 내용과 체험을 알기 쉽게 풀어쓴 것도 이 책의 격(格)을 한 차원 높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지은이는 이 책의 제목 ‘지성’과 ‘영성’에 대해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며 “영성은 지성과의 피나는 결투 끝에 얻어지는 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교회에 나가는 이유에 대해서도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고,지적 감동을 느끼려면 도서관에 가듯이 영혼이 굶주리고 목마를 때 찾아가는 곳이 바로 교회(PP150-151)라고 설명합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요즘 비난받는 교회에 대해서도 특유의 비유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패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가지 말라는 것은 병원 의사가 오진하는 경우가 있으니 앞으로 병이 나도 병원에 가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P216)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이 책을 물을 마셔도 목이 마른 사람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부딪친 그런 사람을 위해 썼다고 했습니다. 소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를 서성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면서 자신도 아직은 그 문지방 위에서 서성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은이의 겸손한 고백이 지성과 영성사이의 문지방 위에서 서성이는,혹은 넘나드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용기와 격려를 불어넣어 주리라 확신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세례 받을 당시 그는 “절망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성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파괴’라는 극한경험이 있어야 된다”고 언급했습니다(P153).

자신의 영혼에 상흔(스티그마)이 없으면 진정한 신자가 되기 힘들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로지 고독과 영혼의 상흔만이 신앙의 가장 밑바탕으로까지 이끌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만나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는 지은이의 투쟁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끝없는 심연 속으로까지 떨어진 저자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한 처절한 신앙의 도전이 감동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기 위한 지은이와 딸 이민아 목사의 처절한 노력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갓 신앙에 입문한 저자에게 이토록 단단한 내공이 숨겨져 있다는 것에 한편 놀라움과 한편 자괴감마저 들 정도입니다.

바라기는 그의 생각대로 신앙이 우리 생활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 또한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한 이어령 교수의 또 다른 글쓰기가 기다려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글을 쓸 것입니다.다 쓴 치약 튜브를 짜내고 또 짜내듯 가슴의 주름이나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 느낌과 생각들을 짜내 글을 쓸 것입니다.아직 내 열정과 사랑과 증오가 식어 버리기 전에 추운 겨울에도 피는 수선화처럼 고개 들고 일어서는 언어들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P60)

이어령 교수, 그는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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