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때때로 천인공로할 사건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쉽게 그를,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것이라 생각되는) 부모를 비판하게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부모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피해자가 사실은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비판하는 위치만 찾는게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잘못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말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무차별적인 범죄가 늘어아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P. 129

인생은 불공평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레이시는 번번이 승진 대상에서 탈락했다. 공들여 몸조심을 해온 엄마들이 사산아를 낳는가 하면, 마약 중독자들은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열네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제대로 살아볼 기회도 가져보기 전에 난소암으로 죽어가기도 했다. 운명의 부당함과 싸울 수는 없다. 그저 참고 견디며, 언젠가는 달라지기만을 소망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식을 위해 참아야 하는 건 훨씬 더 힘들었다. 레이시는 순수의 커튼을 걷어버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제는 그녀가 이 세상이 그 아이에게 이상적인 곳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많이 사랑해주어도, 피터는 그 사랑이 언제나 부족하다고만 여길 것이다.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고 여린 마음의 피터는 또레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곤했다.

하지만 그런 피터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게속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될것이라는 현실뿐이였다.

괴롭히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그들을 바꾸는 세상은 없었고

피해자가 바보같아서, 피해자가 더 괴롭힘을 당하고, 주변의 모든 이들은 방관자로서만 존재하는 세상

그게 바로 요즘의 세상이 아닌가?

요즘은 워낙에 큰  사건이 많아서인지 왕따 문제가 뉴스에 잘 안나온다.

누군가가 자살을 기도하거나 어린 목숨이 죽어서야 뉴스는 반짝 그들을 비춰줄 뿐이다.

학교는 쉬쉬하며 가해자를 감춰주고 피해자가 조용히 전학을 가주기를 요구한다.

세상이...참 나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역시 때로는 이런 뉴스르 보면서 가해자인 학생들을 처벌하기를 요구하는 이면에

피해자인 학생 역시 왜 그렇게만 사는가,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것 같다.

그 아이들이 그 상황을 원해서 만든것도 아니건만 나 역시 냉정한 방관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거다.

 

 

 

 

 

 

 

P.218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고 세상 사람들이 레이시를 비난할 수도 있다. 레이시가 너무 안일했거나 너무 엄했다고, 너무 거리를 두었거나 너무 숨 막히게 했다고 그녀의 가정 교육을 비난할 수도 있다. 그녀가 아들에게 한 일 때문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아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아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올 A를 받고 농구 시합을 승리로 이끄는 아이를 자랑스러워 하기한 쉽다. 그러나 진정한 부모의 인격은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아이에게서 사랑할 점을 찾을 수 있을 때 나타난다. 레이시는 피터가 올바른 아이로 자랄수 있도록 애써왔다.

 

한때 나는 성선설이 옳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였다.

아직도 나는 그래도 선하게 태어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믿기는 한다.

내가 빠트리지 않고 보는 K본부의 '공감'이나는 프로그램을 보면 지독하게 힘들고 그러나 열심히 살고자 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탓에 그걸 보고 있는 순간이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전에 방송된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쏟는 사랑의 증거들을 보게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들에게 집을 주고, 귀저기 살 돈이 없다는 부부에게는 전국 각지에서 귀저기가 배달되어 온다.

여전히 고소득자가 아닌 이들의 쌈지돈에서 매달 기부금이 세어나오고

헌혈의 집에는 자신의 피를 내어놓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있어 우리는 대게 선하게 티어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때로 성악설이 분명한 이들이 눈에 보인다.

이들은 상대를 화나게 하고, 이들의 존재를 세균처럼 일대백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다.

상대를 괴롭히고 죽인다.

하지만 이들이 다, 이혼한 부모를 가지고, 사회의 무관심속에서 자라고,,하는 일반적인 분석의 결과물에 합당한 사람들은 아니다.

내가 아는 이런 인간들 중에도 좋으신, 존경받는 부모님과 그런 형재들 사이에서 혼자서 비뜰어진 본성을 더 악하게 키오온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족하기 위한 분석의 요건들에 그들을 끼어 맞추기를 원한다.

그러한 분석의 조건들에 맞지 않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만족하기 위해서 사회는 이런 악인을 카테고리 지을 평범이라는 단어에서 조금을 빗겨나간 분석자료를 만든다.

 

 

 

 

 

 

 

 

P.284

 그녀의 가슴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걸 아들에게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내 자식이 아무리 눈부시기를 바란다 해도, 내 자식만큼은 완벽하다고 아무리 자위하려 해도, 결국에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게 되어 잇다는 것, 까놓고 보면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를 닮아 있다. 속속들이, 상처투성이다.

 

P.297

 셀레나는 의자에 약간 등을 기댔다. 무모한 짓인 줄은 알았지만, 지금처럼 불행이 전파될 때는 너무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아침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던 샘을 생각했다. 밤사이 녀석은 양말 한 짝을 벗어벼렸다. 발가락 다섯 개가 완도콩처럼 포동포동했다. 그녀는 아기의 캐러멜 피부를 맛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사랑의 언어는 대게 이런 식이다. 눈으로 그를 먹어치웠다. 그의 모습을 마셔버렸다. 그를 통제로 삼켰다 등등. 사랑은 혈류로 분해되고 섞이는 자양물이다. 

 

 

여자들은 대게 결혼을 할 때,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보고

아이를 낳고, 엄마의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데,

나는 요즘이 그런 시기다.

(결혼도 안했고 아기도 낳은적 없다.ㅋㅋ)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게 하는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의 무한사랑

세상의 모든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지만,

또 뒤집어 생각하면 그들 또한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이다.

(아닌 경우도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넘어가고,,)

그런 부모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P.343

 조이가 피터 쪽을 휙 쳐다봤다. "냉큼 꺼져, 별종." 형의 명령에 피터는 얼른 화장실을 나왔다.

그러면서 존재감이 거의 잃어가고 잇는 사람한테 꺼지라는 게 과연 가능한 말일까 하고 생각했다.

 

국민학교에 다닐때였는데 그때는 왕따라는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기 이전이였던것 같다.

우리 학교는 부속국민학교라 한 학년에 딱 3반 밖에 없는 인원이 적은 편이였는데 그때도 분명 왕따라는 게 존재했엇다.

나는 키가 큰 편이라 뒷쪽에 앉았고 대게는 키가 큰 남학생들이 남을 괴롭히는 데에도 앞장섰던것같다.

급식에 고등어조림? 구이? 가 나온날이였는데 그날도 남학생들이 그 왕따를 당하는 학생을 괴롭히고 있었다.

"꺼져" 뭐 이런식의 말들이 오갔던 것 같은데,

나는 꽤나 정의감에 불타는 학생인고로 "그러지 마"하고 편을 들엇다.

"알았다"며 수긍하는 듯 보였지만 내가 등을 돌리자 그 학생의 책가방에 자기들의 고등어반찬을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오랜 시간이 흐른 기억은 항상 온전하게 남지는 않으니까

 

그냥 오랜 시간 잊었던 그때의 시간이, 이 책을 읽는 동안 '피터'를 볼때마다 자꾸만 떠올랐다.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피터'들이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닐까..

 

 

 

 

 

표지의 공허한 뒷모습의 소년이 (피터 일 확률이 높은) 자꾸만 눈에 밟힌다.  

 

 

http://blog.naver.com/mynamemonday/11398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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