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으로 영화보는걸 안좋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넣어다니는 영화가 <쉰들러 리스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물론 너무나 슬프고 인간성에 대한 고민봐 번뇌에 빠지면 그 우울함에서 도저히 빠져나올수가 없어지는 금단의 열매같은 영화지만,
나는 그 영화의 무거운 흑백화면과 그 음악에서 도저히 빠져나갈수가 없다.
(그 음악이 바로 개콘-남보원'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바로 그 음악이다.)
<숨그네>는 책으로 만나는 <쉰들러 리스트> 버전이랄까
물론, 두개의 수용소는 다르고
영상이 중요한 영화보다는 의식의 흐름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는 구성상 두개의 세계는 물론 다르지만
두 곳의 수용소는 인간성을 버리는 시간,
헤르타 뮐러에 의하면 '뼈와 가죽의 시간'이고 서로의 성의 차이를 버리게 되는 시간이니까
나는 원래 책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온갖 종류의 책을 여러권 두고 조금씩 맛을 보며 읽는 편이다.
하지만 숨그네는 달랐다.
왠지 그래서는 안될것같았다.
그래서 이 책은 오롯히 이 책에만 매달렸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 느낌을 고스란히 리뷰하고싶어서 다름 감정이 끼어들까봐 그 동안에는 다른책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어겼다,,추석연휴전에 다 읽은 책인데 오늘에야 리뷰를 쓰고있기 때문에 그 사이의 공백기가 너무 길어서 다른 택을 보지않을수가 없었던 탓이다.)
이책은 멋지다.
진심으로 최고다.
PS 1.
사람의 편견이란,
나는 늘 책을 읽으면서 뒷통수를 한 번씩 맞곤한다
정말 늘,!
겉표지 뒷면에 있는 작가소개를 너무 꼼꼼히 읽는게 문제인건지
그 작가의 성별을 화자의 성별로 착각하는 탓이다.
이번에도 당연이 헤르나 뮐러(독일식 이름이라 정확이 철수,영희처럼 성별이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는 여자니까 처음에 짐을 싸는 주인공이
소년이 아닌 소녀,라고 생각했던거다
15p에 이르러셔야 주인공이 말한다
"나는 물었다. 어디로 가란 말이예요. 난 엄마 아들이잖아요"
엉?
아들이였다고?
결국 시작으로 돌아가 다시 읽을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문장에서도 화자가 여자라고 생각했을때의 의미와 남자라고 생각했을때의 의미는 다르기 마련이니까.
PS 2.
사람은 어떤 심각한 분위기에서건 자신만의 딴생각을 하게된다
그게 어려운 현실을 이겨나가게 하는 인간식의 자기보호본능이기도하고, 때로는 무관심으로 일관되게 하는 인간의 잔인성이기도하다
"아버지는 이 변화무쌍한 시절에 작센 전통의상 발표회와 체조대회에 참가한 소녀들의 사진을 찍엇다. 그러느라 라이카 카메라까지 장만했다..."
잠깐..라이카 카메라?
그 시대의 라이카 카메라..가지고 싶다
뭐 이런식이 되는 거다.
PS 3.
숨그네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인데 나는 숨그네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다.
(나름 어휘력에 있어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이다)
원제인 Aremschaukel 를 번역기어플에 넣어보니 '가슴졸이며 스윙'이라고 나온다
'스윙'이라는 단어보다는 '가슴졸이며'에서 공감하면서 넘어간다.
나역시 '가슴졸이며' 이 '숨그네'를 읽었으니까 말이다.
"...다시말해 심장 모양 삽머리의 목을 쥐고 그 아래에 달린 손잡이를 쥔다. 심장삽은 중심이 잡히면 내 손에서 그네를 뛴다. 가슴속의 숨그네처럼."
"...심장삽은 온전히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느면 금세 눈치 챈다. 그럴 때는 가느다란 공포가 목을 조인다. 관자놀이의 맥박이 미친 듯이 뛴다. 나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목젖이 붓는다. 배고픈 천사는 입 안에, 내 입천장에 오롯이 매달린다. 그건 배고픈 천사의 저울이다. 배고픈 천사가 내 눈을 제 안경처럼 덧쓰고, 심장삽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석탄은 흐릿하게 보인다. 배고픈 천사가 내 빰을 그의 턱 위에 기워 맞춘다, 그리고 내 순결을 그네 뛰게 한다. 숨그네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한 착란 상태이다
숨그네는 바로 이런 것이였던 거다
널뛰는 심방박동
PS 4.
지금 이 순간에도 칠레의 탄광에 묻힌 사람들의 희망스토리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다.
그들을 위로하기위해 찾아간 사람들 중에 콜롬비아(아,기억이 또 가물거린다.남미의 나라였는데...얼굴은 기억나는데..)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누구냐면, 눈덮힌 산에 비행기가 떨어져서 먼저 죽은 동료들의 인육을 먹으며(물론 먼저 죽은 사람의 것이다) 생존했다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살아서 기적적으로 구출되었을때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엇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분노했다.
'인간성' 혹은 '인간이 어떻게..'라는 말은 그럴때 쓰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이기때문에 그렇게 했던거다.
숨그네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페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 바뀐다면 죽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가.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였을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피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픈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줄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착각은 더 심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수용소로 간 고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사실은 효력이 없다. 사람들은 그 반대를 믿는다. 빵 법정처리처럼 시체 처리만도 현재만을 안다. 하지만 난폭하지 않다. 공정하고 순하게 진행된다."
이책에 정말 훌륭한것은 어설픈 판단으로 이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독한 환경에서 만나는 가장 실용적인(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이 얼마나 적절한 단어선택인지) 인간의 행동을 보여줄뿐이다.
PS 5.
이 책의 매력을 꼽으라면 수도 없지만,
그중 하나가 이들이 수용소에서 보낸 마지막 시기에 월급을 받게되고 소비를 시작하게 되는 부분에서 그려지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내가 만약 이 재료들을 가지고 책을 썼다면 일단 신파풍으로 눈물을 흘리게만 할 참으로 셨을것이고 또한 수용소에서의 힘든 시간만을 그리는데 치중하였을것이다
하지만 헤르타 뮐러는 이들이 '뼈와 살의 시기'를 벗어나 '2차 성징'을 하듯이 서로의 성을 찾은후에(이는 재대로된 식사로 가능해진다) 이들의 액션을 그린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우리의 영양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왔다.....두번째 사춘기를 맞은듯 우리는 다시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여자들 사이에 새로운 허영이 시작되었다....남자들은 예전의 몸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느꼈기에....그러나 곧 멋을 부리고 싶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수작업을 해서 우단 깃이 달린 해진 외투로 재즈풍의 챙모자를 만들었다. 설계도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온갖 디테일을 포함한 어려운 구조였다. 먼저 타이어 고무로 만든 뼈대를 천으로 씌운다, 모자의 크기는 비스듬히 귀에 걸필 수 있을 정도로 한다. 챙은 지붕용 타르 종이로 만들고, 머리 부분은 시멘트 포장 종이로 볼록하게 만든다. 안감은 아직 쓸 만한 낡은 러닝셔츠 조각을 쓴다. 안감도 중요했다. 안감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한, 옛 시절의 사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느냐 마느냐가 오로지 빵조각으로 치열하게 이어지는 때가 지나 배가 채워지자 인간은 사치를 부린다.
하지만 이건 역시 인간이란...이라고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것이 아니다. 이부분은 왠지 내게는 더없이 슬픈 부분이였으니까
또한 인간의 이런 본능이 만드는 패션이라는 소비를 나역시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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