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변종모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작가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적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에세이집은 시 같은 느낌이 강하다. 작가만이 느끼는 감정들이 글 속에 많이 묻어있다. 작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독자에게 여행을 권한다. [하지만 가끔 부담 주고 싶다. 부디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로 은근히 부담 주고 싶다. 내가 좋았던 모든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p.11] [그런 당신에게 권유한다 때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워질 수 있으므로 당신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든든해질 수 있으므로 당신은 지금보다 더욱 자주 행복해질 수 있으므로 그런 그곳들을, 사람들을 당신도 만나보라고 권유한다 p.353] 하지만 훌쩍 떠나기에 용기가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책들로 여행을 대신한다.
나도 책을 따라서 작가와 같이 여행을 했다. 첫 번째 장소는 일본 홋카이도의 비에이다. 눈이 쌓여 온통 하얗다. 책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장소도 비에이다. 비에이 숲의 나무와 친구가 된다. 
인도 브린다반에서는 홀리 축제를 인도인과 함께 즐긴다. 홀리 축제는 봄맞이 축제로 서로 물감을 던지고 꽃비를 맞는다. 브린다반의 벵키비하리 사원에서 15분 동안 꽃비를 맞은 순간을 그 어느 순간과도 맞바꿀 수 없다는 작가의 말은 누구든 그 홀리 축제를 경험해보고 싶게끔 한다. [내 삶의 좋지 않았던 모든 기억과 이 순간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이 순간을 팔지 않겠다. p.112-113]
여행 위험 지역이었던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를 가서 작가는 오히려 평화를 느낀다. 분홍색 살구꽃이 흩날리는 파키스탄 산속의 훈자 마을은 아름답다. 이란의 시장통에서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인의 아픔은 나까지도 아프게 한다. 
파란색 마을 모로코의 쉐프샤우엔에서는 휠체어를 미는 남자를 만나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모든 것이 파란색으로 도배된 쉐프샤우엔에서 따뜻한 민트 차를 마셔보고 싶다. 
모로코의 메르주가에서는 바다를 닮고 싶은 사막의 모습에서 나의 꿈을 떠올린다. ["사막을 몇 번이나 건너보고 나서야 사막은 바다가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막에 그어진 파도를 따라 걸으며 사막과 바다는 극과 극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오래도록 그리워하거나 그것을 떠올리면 닮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뜨거운 가운데에 서서 비로소 알았다. 가장 소중한 것은 항상 내 안에 있다는 것을." p.147-148] 
고풍스러운 젊음의 도시 포르투갈의 코임브라에서는 파두를 들으며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가본다. [세상의 모든 지금은 가장 젊다는 당연함을 두고도 늘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안타까워만 했던 시간들이 밟힌다. p.163] 
유라시아의 끝 포르투갈의 호카곶에서는 새로운 결심을 해본다. [모든 것이 끝나고 새로운 모든 것이 시작되는 끝에서 각자의 꿈이라든가 작은 희망 같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마음 한구석에 세워놓고 살아갈 것을 믿는다. 그곳은 결심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p.323] ["먼 곳에서 달려온 파도는 고작 하얗게 부서지는 일로 생을 마감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해도 제 할 일을 멈추지 않는다." p.323성북동 북정마을에서 밤바다를 본다.[와룡공원 언저리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그곳이 바다였다. 밤바다. 그리고 겨울의 바다. p.325] 
스페인의 콘수에그라에서 풍차를 본다. [모든 것이 그렇게 바람이다. 사랑도 삶도 결국엔 죽음도,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p.228-229][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는 것에만 열광하던 내가 섭섭했다. p.227] 
스페인의 산티아고에서는 순례자들과 함께 걸어보고 싶다. 뉴요커처럼 뉴욕을 거닐고, 하와이의 코나에서는 느긋하게 걸어본다. 프랑스의 부르고뉴에서는 가을과 와인향에 취해본다. 와인으로 유명한 곳의 자연 풍경은 좋을 수밖에 없다는 말은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실제 떠난 게 아니지만, 어렴풋이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서 느껴본다. 나도 실제로 혼자 떠나보고 싶지만 두려움이 크다. 유튜브에서 인도의 바라나시와 모로코를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분들의 힘든 순간을 봤던지라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언젠가는 한 번 혼자 떠나보고 싶기는 하다.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책 속에는 각 도시에 관한 글 끝 부분에 그 도시를 여행할 때의 팁도 달려있다. 상세한 설명은 아니지만, 요점을 담고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에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으로 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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