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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류 -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우리 인류는 늘 감염병과 싸워왔다. 태곳적부터 현대까지 감염병과 투쟁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9년 코로나-19가 터진 뒤, 감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우리가 필요한 정보만을 쏙쏙 찾아내긴 어렵다. 이 책은 감염병에 대해 흔히들 궁금해하는 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문과다. 그리고 현재 상경대를 다니며 휴학하고 있는 중이다. 평소 생물이나 화학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수학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문과를 나왔다. 질병, 보건과 같은 부분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어 관심을 가지던 주제였다. 그러다가 인스타를 하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감염병 인류’. 감염병이라는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이 생기는데, 그 뒤에 인류까지 붙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책을 읽기 전엔 제목만 보고 인류가 겪어온 감염병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역사도 좋아하고 질병에도 관심이 있던 나는 흥미가 생겨 관련된 소개를 더 찾아봤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전염병에 알아본다는 말이 꽂혔기에 바로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지은 공동 저자들 소개글을 보니 종교, 신화, 인류학, 정신과 심리에 대해 잘 아는 분들 같아 책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감염병과 우리 안의 원시인
2. 감염병 연대기
3. 기생체와 숙주의 기나긴 군비경쟁
4. 면역의 진화
5. 행동 면역체계의 진화
6. 전염병과 추방, 배제의 이야기
7. 전통에 반영된 감염병 회피 전략
8. 병원체를 피하는 마음과 사회적 혐오
9. 전쟁 혹은 공생
10. 오래된 미래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읽기 전에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종교, 신화, 의례, 심리, 역사 같은 인문학 분야들의 관점에서 감염병을 설명하고, 감염병 그 자체에 대해 설명을 했다. 우선 1장에선 맛보기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부터 파생된 여러 개념을 설명한다. 2장에선 인류 역사에서 우리를 크게 덮쳤던 감염병에 대해 알아보고, 3장에선 우리가 감염병에 걸리는 원인들 (ex. 박테리아, 바이러스, 미생물 총 등)에 대해 살펴본다. 4장에선 면역을, 5장에선 이 책의 핵심 개념인 ‘행동 면역체계’에 대해 배운다. 6장에서는 지금까지 전염병으로 인해 추방되었던 사람들을 신화와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7장에선 의례, 음식 금기 등 전염병과 얽혀있는 금기에 대해 배우고, 8장에선 전염병으로 인해 유발된 ‘혐오’에 대해 말한다. 9장에선 전염병과의 사투를 전쟁으로 비유하여 전염병과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벌였는지를 이야기하고, 마지막 10장에선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한다.
읽으면서 아직도 인상 깊은 부분은 신석기시대 이후에도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때의 우리 인간은 농사보다 쉬운 수렵과 채집을 선택했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난 뒤 대형동물들의 멸종으로 농사를 짓게 되었고, 가축과 곡식을 키우게 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는 게 흥미롭다. 우리 인류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쥐, 모기, 파리 등이 모이고,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도 모이기 시작한다. 즉, 도무스 복합체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전염병,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도시에 몰려 사는 게 주류가 된 환경에서 전염병이 얼마나 휩쓸기 쉬울지 생각하니 오싹해진다.
또한, 행동 면역체계를 설명하며 예시로 든 침팬지의 사례도 흥미로웠다. 이전에는 멀쩡히 침팬지 사회에 녹아들었던 침팬지가 병에 걸리고 나서 다른 침팬지들이 회피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행동 면역체계로 인한 현상인데, 감염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미리 피하는 행동이다. 우리가 역겨움이나 혐오를 느끼는 것은 감염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원시 동물에게서도 발견되고, 고등 동물인 인간이라면 더욱 더 고도로 발달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회에서 뉴스를 통해 각종 인종 차별, 사회면에 나올 법한 일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행동 면역체계가 강력히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막막해지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쉽게 종식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종식시킨다 하더라도 이후에 지구 온난화, 환경 파괴등으로 인해 감염병은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보수적이고, 내부에서 분노를 표출하려고 할 텐데 이런 현상을 억제할 수 있을지, 그리고 감당할 수 있을지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 유쾌하고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 같은 화학과 생물에 문외한인 문과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어있다. 중간중간 곁들인 유머러스한 개그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고, 실제로 대학에서 교수님께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 생소하든 익숙하든 영어 단어를 어원부터 설명해주어서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암소는 라틴어로 vacca고, 이 단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백신(vaccine)이 파생되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책 속에선 내용과 함께 풀어준다. 평소 영단어 어원에 관심이 많았어서 그런지 사소한 배려라고 느껴졌고, 첫 번째로 든 이유와 더불어 이해하기 쉬운 책이라고 느꼈다.
다음으로, 매우 넓은 범위를 다룬다는 점이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전염병에 대해 쓴 책이라 그런지 역사, 종교, 사회 등 여러 범위에 걸쳐 쓰였다. 넓은 범위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전염병에 대해 가볍게 다루진 않아, 개인적으로 개론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양하게 읽고 싶은 사람들은 원하는 주제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안 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론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적어놨지만, 이론만 다루는 것이 아닌 작가들의 주장과 의견이 담겨 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의견이 안 맞는 사람들은 잘 읽히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유머러스한 부분 때문에 잡설명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이 얘기하시는 개그가 재미있는 학생이 있지만, 재미없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부가적인 설명이나 개그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코로나-19를 사실에 기반해 설명할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감염병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과거서부터 겪은 우리 인류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는 곧 감염병의 역사다. 이 책의 처음서부터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복잡한 것이 싫고, 감염병에 대해, 그리고 코로나-19에 대해 팩트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가짜 정보, 영양가 없는 정보보다 이 책 한 권이, 책 한 권으로 지불하는 가격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창비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이 책에서는 감염병에 관한 다양한 진화의학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병원체의 진화가 아닙니다. 그에 대한 ‘우리의 적응 혹은 부적응‘입니다. 바로 기나긴 감염병과의 전쟁을 통해 빚어진 인간의 신체 그리고 정신에 관한 진화병리학적 설명입니다. - P47
따라서 ‘혐오‘를 이야기 할 때에는 관점에 따라 용어의 범위와 맥락을 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혐오‘는 역겨움의 정서와 기피행동에 한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역겨움과 기피는 감염 및 오염의 문제와 직접 관련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과 밀접한 상관을 갖기 때문입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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