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영준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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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선배가 동네 성당에서 하는 귀농스쿨에 갔다. 그런데 첫 수업에서 강사가 한 시간 동안 떠드는 주제가 의외다.

"당신이 귀농을 하면 절대 안 되는 이유"

태풍, 병충해, 단가폭락 등 영농조합이 망하는 수많은 사례를 언급하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을 하시겠다면 자기 강의를 들으란다. 이 책도 비슷하다.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골목을 기웃거리며 상가를 알아보는 이들에게 절대 자영업하지 말란다. 대왕카스테라, 연어 무한리필, 치아바타 브런치 가게가 망한 이유와 각종 통계자료가 근거로 제시된다. 자영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증거이기에 당신이 자영업하겠다고 나서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란다.

책 표지엔 퇴사 준비생이 알아야 할 마켓 인사이트라고 적혀있지만, 결론은 ‘자영업 절대 하지마라’이다. 스스로 충분한 역량이 갖춰져 있고 외부환경이 좋다면 모를까.
자영업자가 줄어들어서 생존자들이 여유롭게 목초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선이라며 18세기 맬서스의 이론을 꺼내들었을 땐 이게 뭔 궤변인가도 싶었지만, 딱히 반박할 논리도 없었고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종의 생존을 위해선 잉여 객체들이 죽어야 하는 거다.

김바비님은 시니컬하다. 약간 회의주의틱한 면도 있다. 아마 그가 소설을 쓴다면 나심 탈레브처럼 자아를 투영한 주인공 네로 튤립을 죽여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한 시니컬한 돌직구가 이 책을 독특하고 가치있게 만든 것 같다.
글 한 가닥 쓰시는 분들께서 상세한 서평을 남겨주셨기에, 내가 공감한 부분을 중심으로 포스팅한다.

1. 특수관계, 꽌시(关系), 래포(rapport)

D업체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7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힌트는 업체 대표의 배경에 있다. 처음 가게를 차린 지역은 인천의 핵심 상권으로, 대표의 부친이 그 상권 중심의 건물주였다. 계약만기와 권리금 회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p94)

인맥과 영향력으로 초기 성공을 만들어내거나, 자본으로 실패를 최대한 미룬다. 그리고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만들어내는 선순환을 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p82)

울 아버지는 50대 중반에 명퇴 당했다. 당시 나는 복학생, 동생은 대학 신입생이었고, 돈이 필요했던 아버지는 퇴직금으로 복덕방을 차렸다. 때마침 어머니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고, 초반에 복덕방은 나름 잘 됐다. 건물 매매 중개를 몇 건 했던 아버지의 허세는 하늘을 찔렀고 급기야 무리한 빚을 내어 건물을 하나 매입한다. 그러나 곧 리먼사태가 터졌고, 부동산 침체와 이자부담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했다. 부동산이 바닥을 찍었던 ’13년 말~’14년 초 아버지는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한 건물을 헐값에 매각하고, 이혼했으며, 간암을 얻었다.
3년간 몸과 마음을 추스른 아버지는 얼마 전 프랜차이즈 식당을 오픈했다. 칠순의 나이에 간암 수술을 받은 몸으로 주방과 홀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다행히 적자 경영은 면하고 있다. 이유는 도레도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랜차이즈 대표가 아버지의 지인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아버지를 긍휼히 여겨 좋은 조건을 제시했고, 입에 풀칠할 수준을 보장했다. 대기업 사무직으로 50대에 명퇴당하고, 복덕방을 하던 사람이 칠순의 나이에 식당을 한다? 집에서 설거지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100% 망해야 하지만, 프랜차이즈 대표와의 특수관계 덕분에 나름의 선전을 하고 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대학 동기 중 외식사업으로 나름 성공한 친구가 있다. 스페인 음식점으로 성공한 친구는 일본 도시락으로 두번째 성공을 한다. 두번째 성공의 배경엔 유통 대기업이 있었다. 벤토음식점이 백화점에 진출했고 대박을 친 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기업은 신규 아웃렛 매장에 친구의 스페인 음식점을 낼 것을 요구했다. 아웃렛을 찾는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하다. 단가가 비싼 스페인 음식점에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 친구는 난색을 표했으나, 대기업 식품 MD는 단호했다.

니가 여기까지 큰 게 다 우리 때문 아니냐.
협조 안 하면 기존의 벤토매장 계약도 전면 검토하겠다.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는 아웃렛에 스페인 음식점을 오픈했고, 얼마 후 폐업했으며, 수 억원을 날렸다.

용역입찰에 들어가면서, 발주처 계약담당자와의 꽌시가 수주에 도움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부르는 입찰이다. 일개 입찰도 특수관계가 좌지우지 하는데, 사업은 더 하다. 성공한 사업가의 배경엔 이런 래포가 많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성공사례를 말할 땐 이를 숨긴다. 합리적 의심을 갖고 성공 스토리를 들어야할 이유다.

2. 좋은 아이템이 아닌 팔리는 아이템

미인 콘테스트에서 100명의 사진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6명을 선택하기로 했다. 단, 가장 표를 많이 받은 6명을 선택한 참가자에게 상을 준다고 치자. 이 경우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할 것 같은 6명의 미인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자기 눈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선택해봤자, 그것이 다른 참가자들의 선택과 동떨어져 있다면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p85)

JTBC 차이나는 클라스 PD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유시민 작가와 오상진 아나운서를 출연시키고 좋은 컨텐츠를 담아도 시청률이 안나온단다. 반면 먹방은 대충 B급 출연진 섭외해서 비주얼 좋은 음식을 클로즈업하면 시청률이 잘 나온다. 자녀에게 차이나는 클라스와 먹방 중에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전자를 권하겠지만, 막상 내가 TV를 켜면 먹방에 채널고정이다.

HRD파트에서 일할 때, 좋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유명한 강사를 섭외하고, 질 좋은 커리큘럼을 설계하면 당연히 교육생들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교육생들은 이웃집 언니, 서클 선배 같은 강사를 더욱 좋아했다. 스펙과 강의경험이 적어도 교육생들과 공감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고민해주는 강사에게 매력을 느낀 거다.

일본 반도체 업계가 패전한 이유도 비슷하다. 장인정신으로 고품질, 좋은 아이템을 고집했지만, 막상 시장이 원하는 스펙, 팔리는 반도체를 만들지 못했다.

3. 노오력과 구조적 한계

노력의 배신을 이해하고 절박한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력과 절박함이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은 10년 전에 크게 유행한 어떤 책에 나온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그것이 이뤄지게 도와준다”는 말과 크게 다를 바 없다.(p240)

시장이 확대되려면 소비자의 저변이 확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업종은 금방 포화상태를 맞게 된다.(p48)

Seed 단계의 스타트업 창업자는 자기고용(self-employed)이란 측면에서 자영업자와 비슷하다.
나는 스타트업 지원기관에 일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 대부분이 2~3년을 못 버티고 폐업했는데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의 구조적 한계다. 소수의 얼리 어댑터를 제외하고 그들의 서비스를 믿고 구매할 만큼 시장 사이즈가 크지 않았다. 물론 한국 내수시장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나오기 힘든 부분도 있다.

팟캐스트 쫄지말고 투자하라에 소개된 ‘크고’라는 업체가 있었다. 2012년 당시 역삼동 스타타워 구글 사무실에서 진행된 공개방송을 방청했기에 또렷이 기억한다. 이 업체의 아이템은 클라우드 알바다. 양평동 롯데제과 마케팅실 김대리는 궁금하다. 최근에 전국적으로 아이스크림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군산, 나주, 창원, 경주 세븐일레븐 매장에서 이 프로모션이 잘 진행되는 지 궁금하다. 직접 가자니 시간이 없고. 김대리는 ‘크고’ 앱에 공지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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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학생들은 김대리가 원하는 매장 내부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사례로 모바일 상품권을 받는다. 소소한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클라우드 알바 플랫폼인 거다. 괜찮은 아이디어임에도 업체는 사라졌다. 회사를 지속가능하게 할 만큼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가이드, 청소대행 플랫폼 등 소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에 백스페이스라는 스타트업을 봤다. 해외여행시 캐리어 잉여공간을 교민에게 팔아 여행 중 최대 20만원의 용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란다. 교민은 자신이 받고 싶은 소중한 물건을 EMS대비 30~50%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수요와 공급이 있을 지 의문이다. 당장 나만 해도 해외에 갈 땐 고객에게 줄 선물과 일행이 먹을 라면, 고추장, 참치, 소주로 가방이 꽉 찬다.
많은 스타트업이 내부역량 즉, 아이디어, 기획력, 개발과 다지인 역량을 보유하는데 집중하면서도 외부의 시장 규모에 대해 오판한다.

김바비님의 다음 책이 계곡(밸리)의 전쟁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실리콘밸리, 테헤란밸리, 판교밸리, 실리콘앨리에 있는 초기 스타트업들은 자영업과 비슷한 점이 많다. 경제와 투자의 관점에서 스타트업은 흥미로운 소재 아닌가. 즐거운 독서를 선사해주신 김바비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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