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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평점 :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절, 즉 우리가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기쁜 날이다.
하지만 이날은 일본인들에게는 대동아공영의 헛된 꿈이 무참하게 깨진 치욕의 날이다.
이처럼 같은 날이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나’ 혹은 ‘우리’의 입장에서만 이 날을 이해해 왔다.
반면 우리와 같이 한반도에 살면서 정반대의 의미로 이 날을 맞이한
재조 일본인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에게 그들은 우리와는 상관 없는 단지 나쁜 ‘식민 지배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 <조선을 떠나며>는 특별히 이들 재조 일본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해방을 맞이한 이 기쁜 사건에 직면하여
어떤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또 어떤 인식을 하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언급된 패전 당시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정한 환상(?),
즉 일본인들은 인내심이 강하고 단결력이 강하고 희생정신이 강하다는 선입견과 거리가 멀다.
패전과 점령, 그리고 강제 귀환이라는 긴박한 순간에
일본인들은 오직 이기심과 생존본능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마도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묘사된 당시 재조 일본인들의 모습은 일정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덕목은, 이 책이 기반한 자료(특히 모리타 자료)의 한계를 꿰뚫어보며
피상적인 감상에만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패전을 맞이한 재조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인식은 철저하게 그동안 일본에 식민지배로 인해 고통당한 조선인들을 배제하고 있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재조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 내에서 지배자로 살아갔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들에 큰 고통을 안긴 1945년 8월 15일의 패전이
그들 스스로 자초한 침략전쟁의 결과라는 점을 이 책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일본인들 대다수는 패전 당시 재조 일본인처럼 ‘피해자’라는 인식만 갖고 있을 뿐,
‘가해자’라는 인식은 전혀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책이 아니라
오늘의 일본을 보여주는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