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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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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출 때 비로소 새로워지는 세상의 역설

 

 

<프러시안 블루>를 읽으면서 나는 팩션을 생각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같은 팩션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관심있게 보았던 유튜브 컨텐츠들도 떠올랐다. 역사나 미술을 주제로 구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영상들. 논픽션에 가깝지만 픽션처럼 읽히는 이야기.


<슈바르트실츠 특이점>으로 넘어갈 때,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구나.’했다. 앞선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 여겼다. 한 인간의 실존이 한쪽 가장자리가 완전히 뜯겨 나간 편지가 되어 아인슈타인에게 날아들자마자 절멸하는, 아인슈타인의 손끝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전장에서 소실되는 깊고 검은 점. 슈바르트실츠라는 세계가 하나의 특이점이 되어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촛불처럼 꺼지는, 그 속에서 한 인간의 느낀 실존적 공포를 나타낸 한 편의 소설로 읽었다.


<심장의 심장>까지도 그랬다. 모치즈키 신이치와 그로텐티크의 같고도 다른 삶이 공간을 넘어 접하고 접하는 광경을 읽을 때까지도 나에게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었으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넘어 <밤의 정원사>까지 읽어내린 뒤, 이 책은 나에게 한 권의 유기체적 장편소설이 되었다.


한 편을 단편소설로 확정하면 다른 편들도 각각의 단편소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그만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소설은 다르게 정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었다.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벵하민 라바투트의 세계를 이해하길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양자역학처럼.


멈춘다면 관측할 수 없고 그렇다면 알 수 없다. 읽지 않은 사람들, 읽기를 중단한 사람들에게 저자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읽었다면, 관측했다면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수만 권의 책 중 하나에서 소설의 문법을 바꿀 새로운 작품이 된다. 파동으로 측정하면 파동이 되고, 입자로 측정하면 입자가 되는 원자처럼. 김춘수의 <>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을 관측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꽃이라 이름 짓는 일이다.


벵하민 라바투트는 실존했던 인물과 그의 성취 사이를 파고들어 새로운 세계를 찾아낸다.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한 세계를 읽어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번뜩인 천재적 순간들과 지극히도 인간적이었던 그들의 행동. 기록에 없었던 인물이 역사 속에서 종횡무진하지도, 알려지지 않은 보물이나 거장의 작품을 작품을 찾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여정 같은 것도 없지만 그래서 더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야기.


질소비료와 청산가리가,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한 쌍이 되어 양자역학을 은유하는 세계. 불세출의 천재들도 외설적 환각에 둘러싸인 순간들이 없었다면 결코 읽어낼 수 없었던 천수 여신의 변덕. 뉴턴의 질서를 산산이 조각내고 두 눈알을 후벼내야만 볼 수 있는 역설의 세계를 우리는 벵하민 라바투트라는 작가를 통해 엿본다. 나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통해 소설이라는 세계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이해하기를 멈춘다는 것은, 세계를 읽어내는 관점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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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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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면 모두 즐거운 일들만 있었던 듯한 십 대 시절이건만, 한 걸음만 더 기억의 숲으로 발을 내디뎌도 어둡고 퀴퀴했던 시절의 조각이 발밑에서 파삭거린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노상 하던 어릴 때가 좋았다는 말을 그저 믿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두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가끔은 내 등 뒤를 살살 쓸어내려서, 그 손길만큼은 소름이 끼치도록 실감이 나서 그래서 좋았다말하며 애써 묻어두는 거라고. 기억을 불러올 방아쇠 소리 한 번에도 지금 진행중인 일인 양 가슴이 저려서, 그래서 그렇게 얼버무리고 마는 것이다.

 

<워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보통의 십 대, 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에 비해서는 매우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낸 그. 그에게 일어난 일을 영원을 살아가는 마법사가 힘을 다해 만든 타임 리와인더 머랭쿠키로 바꿀 수 있었을까?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돌아간다 한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나. 긴 시간을 되돌릴수록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대가가 그의 인생 하나만은 아닐 것이 분명하니 그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기로 한다.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지도 못하는, 모질지 못한 아이. 그래서 그를 그렇게 미워하던 배선생도, 누명을 씌웠던 무희도 없는 오래전으로 돌아가자고 차마 결심하지 못한 아이. 위저드 베이커리의 상품으로 일을 도모하려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아픈 일들을 겪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원망하지 못하는 그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는 사이다 같은 복수자보다 해야 할 말도 속 시원히 하지 못해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그런 가 아직 마음속에, 혹은 지나간 기억 속에 옹송그린 채 앉아 있으니까.

 

흔히 듣던 동요 가사의 도깨비 나라가 이상하고 아름다운이유는 현실 속의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은 실제보다 크고 기괴하게, 하루를 살게 하는 자잘한 행운은 보관처럼 아름답고 값지게 보일 때 세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위저드 베이커리>처럼 정말로 잘 만든 판타지는 그 속에서의 위로와 안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책을 덮은 뒤 현실 앞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걸어 나갈 수 있는 힘. 시리도록 평범한 필연적 비극과 먼지처럼 굴러다니는 불행 속에서 별것 아닌 행운을 찾아 붙잡고 하루를 잘 살아낼 힘을 준다.

 

인간은 이야기를 먹고 산다. 하물며 <위저드 베이커리> 같은 이야기라면야, 몇 번이고 먹을 수 있다.

 



#위저드베이커리 #구병모 #창비 #소설Y #위저드베이커리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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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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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돌봄 수혜자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하지 않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며 집안의 수많은 돌볼거리들은 대부분 어머니 몫이다. 나의 몫은 식사 준비의 일부, 청소의 일부, 반려동물 돌봄의 일부분. 나는 아직 온전하게 가족을 돌본, 내 어머니와 같은 경험이 없다. 홀로 돌보며 살았던 기간이 있었지만 임시적이었다. 언제든 기대기 좋은 나의 원가족을 배경으로 둔 혼자살이였다.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이 비추는 돌봄노동의 현실은 싸늘하다. 돌봄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지만, 누구도 돌봄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나 자신을 돌보기도 바빴던 무한경쟁사회의 젊은 여성들이 이를 악물고 정상가족 안으로 뛰어들어 분투하고,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이들은 뛰쳐나오거나 혹은 뛰쳐나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김유담의 이야기가 매섭다. 2030 여성들이라고 삶이 두 개 주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포기하지 않고 정상가족을 이룬 여성들은 갈림길 앞에 선다. 전업주부로 살자니 내 이웃과의 거리의 혜미와 같은 삶이, 꿋꿋하게 일자리를 지키자니 돌보는 마음의 미연과 같은 삶이 그들을 기다린다. 슈퍼맘을 넘어 초사이언맘이 되어야 하는 상황. 김유담 소설의 돌봄노동자들은 누군가를 돌보면서도 돌보는 자에 머물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각개전투를 펼친다. 누구도 함께하자고 하지 않는 무임금 노동의 구렁텅이에서 그들의 참호전은 계속된다.

나 역시도 김유담의 인물들과 같은 삶을 목격했고, 그들처럼 살 뻔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이모 부부의 별거로 인해 사촌 언니와 동생이 나와 함께 살았다. 우리 엄마는 ()의 큰엄마처럼 그들을 돌보았지만, 동시에 주인공의 어머니처럼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작년 겨울, ‘과 같은 사람과 결혼할 뻔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어냐는 내 물음에 가족이라고 대답했던 남자.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를 사랑했던 나는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과 베이비시터를 검색했다. 아이를 갖고 싶은 건 그였지만 돌봄에 대한 걱정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가족이 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만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조리원 생활도,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CCTV를 바라보며 의심하는 워킹맘 생활도 모두 내 삶이 될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이 든 부모님을 돌보게 될 것이다. 형제자매가 없어서 부모님에 대한 돌봄을 나눌 사람은 없겠지만, 나보다 덜 돌본다고 원망할 사람도 없다. 담담하고 씁쓸하다. 입원이나 특별재난지역도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수 있고, 부모님과 손녀까지 모두 돌보면서도 누구 하나 고맙다는 사람 없는 일남의 모습이 먼 미래의 나일 수 있다.

()의 큰엄마처럼 손이 닿는 이들을 모두 돌봐도 돌려받기는 어려운 게 돌봄이다. 여성들이 큰엄마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기다리는 사회, 그리고 주인공의 엄마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돈까지 잘 벌어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돌봄과 돌보는 사람들은 멸종위기종이 되고 만다. 돌봄노동을 시장에 맡긴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요양병원 이야기는 차치 하더라도, 계산된 돌봄 속에선 ()의 새언니처럼 가진 재산의 크기에 따라 대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겨야 한다. 그런 미래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돌봄을 받길 바란다면 돌보아야 한다. 돌보는 일이 서툴다면 돌보며 배워야 한다. 조금 더 지극한 사랑을 가졌다고, 돌보기에 익숙하다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몫까지 미뤄서는 안된다. 그것이 서로를 돌보는 사회의 첫 단계가 아닐까. 돌봄은 서로를 지극하게 사랑하는 마음의 실천으로 자리해야 한다. 너무 이상적이기만 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돌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가는 길에 김유담의 돌보는 마음이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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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살아낸, 끝날 수 없는 생존의 기록
김잔디 지음 / 천년의상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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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잔디님. 이 책을 읽고 많이 아팠습니다. 이 일에 대해 알고 나서 당신이 겪었던 일들을 짐작만 했을 뿐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제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잔디님 앞에 닥칠 고난과 부조리를 알고서도 용기 있게 고백한 당신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 지 '김지은입니다'를 이미 읽어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와 잔디님께 일어났던 일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들. 견뎌주셔서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잔디님이 참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에게 너무나도 나쁜 짓을 한 박원순 전 시장을 이해해보려 애쓰고, 그가 비겁하게 스스로를 죽였을 때에도 그의 죽음에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는 잔디님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죽음으로 도피한 범죄자의 생명도 생명이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잔디님의 마음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잔디님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더욱 살만해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잔디님이 다른 사람을 마음 깊이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분이셔서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라면 어땠을지,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지...
잘 견뎌주신 잔디님, 당신이 겪은 일을 우리가 세세하게 알 수 있도록 글로 써 주신 당신께 감사합니다. 복기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하지만 이 책이 있어서 그가 저지른 범죄와 치졸한 도피, 그 지지자들의 역겨운 만행은 영원히 글로 남을 겁니다. 잔디님이 힘겹게 내딛은 걸음이 고통을 겪고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되고, 저 처럼 무심했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화인이 되어 서로를 일깨웠으면 좋겠습니다. 악의를 담아 짓밟고 짓밟아도 꿋꿋하게 일어나 입을 열고, 꺾이고 부러져도 고개숙이지 않겠습니다.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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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몬스터! 사계절 그림책
피터 브라운 지음,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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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의 모습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은 자신의 행동을 억압하고, 성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지적하는 모습입니다. 선생님이 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직은 미숙하기에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행동을 제한하기도 해야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선생님은 몬스터!>의 중립적 공간인 공원에서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게 됩니다. 늘 지적받는 대상이었던 바비가 바람에 날아가던 선생님의 모자를 잡아주고, 학교에서는 엄격하기만 하던 선생님이 공원에서 오리들과 하던 꽥꽥놀이에 바비도 함께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할 수 없었던 종이비행기 날리기를 바비는 아지트에서 선생님과 함께 하지요. 그리고 그 뒤로 바비의 학교생활은 조금 달라집니다. 우리가 사회 안에서의 역할에만 갇혀서 상대방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 역시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게 됩니다. 바비와 선생님은 공원에서 서로의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고 나서 서로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멀고 딱딱하기만 한 선생님도 주변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금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어렵고 무섭게 느껴지는 아이들이 읽어보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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