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상한 이름 - 충돌하는 여성의 정체성에 관하여
멜리사 호겐붐 지음, 허성심 옮김 / 한문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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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고 난 후 내 삶은 철저히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세심히 살피고 적극적으로 반응해줘야한다 생각했기에 나의 욕구나 자율성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엄마라는 정체성 외에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고, 이 느낌은 아이의 성장을 보는 기쁨과 별개로 나를 우울의 나락으로 끌어 내렸다.



BBC 과학기자 멜리사 호겐붐이 쓴 <엄마라는 이상한 이름>은 엄마가 된 후 정체성 충돌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글이다. 저자는 과학기자답게 왜 엄마의 삶은 왜 이토록 힘에 부칠까하는, 자칫 하소연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생물학적, 사회과학적, 심리학적 연구결과들을 근거로 접근해 풀어간다. 




"모성의 시작은 사랑과 고통이 복잡하게 뒤얽혀 충돌하는 세상으로 나타났다." p72



어느 누구도 임신, 출산, 육아의 현실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를 갖는 순간 여자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달리 말해 기존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는 감춰버린다. 호르몬에 의해 감정이 변하고, 인지능력은 둔해지고, 메스꺼움과 졸음은 수시로 찾아온다. 배가 불러오면서는 골반이 빠질 것 같은 고통과 자궁에 방광이 짓눌러 자주 요의를 느끼게 된다. 



이런 물리적인 불편함 외에도 여자는 임신한 몸에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 그 시선은 친절할 때도 있지만 불편할 때가 많다. 특히 일하는 여성은 임신으로 자신의 업무능력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기도 한다. 저자 역시 이런 이유로 직장에 임신 사실을 오랫동안 숨겼다고 한다. 12주가 되기 전 빈번하게 일어나는 유산을 모체의 문제로 보는 사회적 시선은 임신 사실을 더욱 비밀로 부치게 만든다. 그래서 가장 민감한 시기, 일터의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불안감 속에 지내야 한다.



출산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선택적 제왕절개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은 듯 하지만 '자연분만'을 정상적인 상태로 상정하는 상황에서 응급 제왕을 받은 산모는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런 트라우마는 심할 경우 산후 우울증으로 번져 육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신체적 완벽함에 집착하는 사회'는 출산 이후 여성들을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든다. 출산 이후 변해버린 신체- 축처진 가슴과 늘어진 배, 튼 살 등등-는 당연한 것임에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삶이 완전히 바뀌는 여정의 시작이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는 반갑지 않은 일들이 수 없이 뒤따른다.

언제, 어떻게, 어떤 어머니가 될지에 관한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성역할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P159




이 책은 엄마가 된 여성에게 기대하는 성역할이 여성의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모성 페널티'에 대해 집중한다. 특히 일하는 여성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시대에도 사회에서도 육아에 있어 주양육자는 엄마다. 때문에 여성들은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임금과 지위 하락 등을 빈번히 경험한다. 부모 양쪽에게 출산과 육아를 위한 휴가가 제도적으로 지원이 되어도 엄마의 휴가는 당연하지만 아빠의 휴가는 옵션이다. 사회적으로도 출산 휴가를 충분히 쓰지 않은 엄마는 모성애가 약한 비정한 엄마로 보는 반면, 출산 휴가를 쓰는 아빠는 업무 능력이 시원찮은 것처럼 인식된다.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가 오래되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유럽에서도 조차 이런 현실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또 다른 문제는 '완벽한 엄마', '좋은 엄마'에 대한 기대를 주입하며 여성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늘 아이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욕구를 육아 중에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가 된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과 엄마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희생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렇게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 불만의 씨앗'은 육아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돌봄노동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도 여성의 몫이 더 크다. 거기에 더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지노동 역시 여성의 몫이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인지하고 선택지를 찾는 과정은 시간과 신경이 많이 드는 일임에도 눈에 보이지 않기에 노동 취급도 받지 못한다. 나 역시도 남편이 육아 참여가 높은 편임에도 항상 내가 월등히 많은 시간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 놈의 인지노동 때문이었다.  




이 책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모든 희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숭고한 모성 신화로 점철된 외부의 압박과 기대, '좋은 엄마'가 되려는 자기 비판에 짓눌려 자신보다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어쩌면 엄마란 존재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든 '노예'가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행복감이라는 허울을 보상이라고 세뇌시키고, 엄마들이 자기 시간을 모두 포기하고 무급 노동에 전념하게 만드는. 하지만 스스로 자초한 무덤이라 불만조차 얘기할 수 없어 '인지부조화'에 시달리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 이런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에게 큰 힘이 될 책이다.



※ 컬처블룸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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