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슐리외 호텔 살인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1
아니타 블랙몬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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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의 매력은 사건이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밤을 꼬박 반납한 추리 소설들이 그간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르 시리즈는 지금 관점에서는 대단한 트릭이 숨어 있지 않지만 잘 짜여진 이야기 구성 자체가 주는 스릴 때문에 밤을 새우게 했던 고전 추리 소설이다. 



<리슐리외 호텔 살인>은 그런 고전미가 팍팍 담긴 추리 소설이었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져 가는 가운데 비밀에 다가가거나 알게 된 자는 죽임을 당하는, 흡사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시키는 소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슐리외 호텔 살인>의 작가 아니타 블랙몬은 아가사 크리스티 이후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장식한 '후더닛(Who done it)' 계보를 잇는 여성 작가 중 하나라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처럼 이 장르를 정립한 자는 아니지만 재미 면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 아니 코믹적인 요소라면 이 책이 훨씬 돋보이는데, 왜 이토록 늦게 알게 됐을까 찾아보니 작가 사후에 책이 다시 복간되어 나왔다고 한다. 정말 땅 속에 묻힌 오래된 캡슐을 열어본 기분이랄까.



이 소설은 애들레이드 애덤스라는 예민함 가득한 50대 독신녀(예전 같으면 히스테릭한 노처녀로 불릴;)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배경인 리슐리외 호텔은 장기 투숙자들의 폐쇄적인 세계가 형성된 곳. 로비에 죽 치고 앉아 텃새를 한껏 부리는 장기투숙자, 그 무리의 리더 격으로 우리의 미스 애덤스가 있다. 그들은 한달 이상 머물지 않는 뜨내기 손님들에게는 곁을 내주지 않는다. 애덤스는 몹쓸 호기심 많은 중년 부인답게 타인을 관찰하는 게 취미인데, 이런 버릇이 추리 소설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어느날 그녀의 방에 호텔에 온 지 일주일 정도 밖에 안된 남자 제임스 리드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살해 현장에 출동한 버니언 경위는 제임스 리드가 흥신소 직원이고, 이 호텔에 온 이유가 장기 투숙자의 의뢰를 받고 누군가의 뒷조사를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들어 장기 투숙자들 중에 범인이 있다고 추정하고, 이들을 상대로 집중 조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개개인의 사연과 비밀, 그리고 애덤스가 참한 아가씨라 생각하는 캐슬린 어데어와 천하의 바람둥이 스티븐 랜싱 사이에 오가는 묘한 로맨스가 재미를 더한다. 미스 애덤스가 스티븐 랜싱에게 반해가는 과정은 <오만과 편견>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너는 찐이었다고 할까.


'후더닛' 장르답게 지목되는 범인은 자꾸만 바뀌어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해결 과정 속에 밝혀지는 호텔 장기 투숙자들의 비밀들. 나의 추리는 자꾸 헛다리를 짚지만 그 때문에 끝이 너무 궁금해서 책에 손을 놓지 못한다. 1930년대 소설이, 50대 중년 부인이 화자가 되어 호들갑 수다 떨듯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토록 흡입력이 있다니.


게다가 모든 걸 다 꿰뚫어보는 듯 똑똑한 경위를 제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육중한 몸의 미스 애덤스. 자조적인 개그가 많이 나오는데 보는 내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코믹적인 요소는 아가사 크리스티에겐 없는, 이 책만의 매력이 아닐까.



긴 세월 묻혀 있었지만 전혀 빛 바래지 않은 고전 소설, 게다가 매력적인 주인공  미스 애덤스의 또 다른 시리즈를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




​※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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