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타리안 : 솔페리노의 회상 - 개정판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6
앙리 뒤낭 지음, 이소노미아 편집부 옮김 / 이소노미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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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타리안 Humanitarian'은 인도주의를 뜻한다.

나도 이 단어를 이소노미아 인류천재들의 지혜 시리즈를 통해 처음 알았다.


한때 일터 인근에 적십자사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고, 매년 내 앞으로 후원을 위한 고지서가 날아오는 정도로 알고 있었던 적십자사, 사실 국립혈액원이랑 비슷한 구호 단체로만 알았다. 이런 무식한 나를 반성해본다.


<휴머니타리안>은 앙리 뒤낭이 쓴 '솔페리노의 회상'과 이후 그의 제안으로 여론이 형성되어 이르게 된 '제네바 협약'까지를 다루고 있다. 

앙리 뒤낭은 철학자도, 작가도 아닌 식민지에서 곡물 유통을 하던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순전히 자신의 사업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폴레옹 3세 황제를 만나러 이탈리아 전장으로 달려갔다가 목격하게 된 전쟁의 참상. 그는 생생한 언어로 그때의 참혹함을 기록에 남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솔페리노 전투는 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에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전쟁이었다. 당시 많은 프랑스인과 그 식민지에 속한 용병들이 참전했고, 앙리 뒤낭에 따르면 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맹하게 싸웠다. 


하지만 전쟁은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광기와 혐오, 분노, 적개심 같은 악의 감정을 남긴다.

전장에서 일어나는 숱한 보복들은 끔찍함에 읽는 내내 마음을 쬐게 만들었다.


그는 3장부터는 전투 이후의 상황을 기록한다. 

부상병들의 상황은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전장에서 시신들 사이에 버려진 부상병들은 숨이 붙어 있음에도 같이 매장되기 일쑤였고, 부상 정도와 상관 없이 적절한 간호를 받지 못해 방치된 채 죽어갔다.

특히 적군인 오스트리아 군이 받은 대우는 더욱 처참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도덕심과 저 많은 불행한 부상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이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는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앙리 뒤낭 <휴머니타리안> p105 / 이소노미아


1차 집결지인 카스틸리오네는 국적 따위를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의 부녀자들이 앙리 뒤낭을 감동시킨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이들의 간호는 고통을 덜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브레시아는 좀 더 상황이 나았다. 도시 전체가 큰 병원으로 바뀐 이곳에는 행정적인 처리가 조금 더 체계를 잡아가고, 마을 주민들도 열정적으로 이들을 돕는다. 하지만 민간의 도움은 지난한 재난 상황 속에서 금세 지쳐간다.


큰 도시인 밀라노에서도 열정적인 민간인들의 도움이 빗발친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관심이 때로는 의료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앙리 뒤낭은 이런 상황에서 전문적으로 교육된 구호 자선 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편집 여담에 따르면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인류애적 관점이라면, 인도주의는 전쟁, 기아, 질병처럼 매우 극단적인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면서 '도울 힘이 있는 사람이 도와야겠다며 활동하려는 마음'이다.

휴머니즘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다.


앙리 뒤낭은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앞으로 미래에도 이와 같은 끔찍한 전쟁을 인류가 피할 수 없다면, 전시가 아닌 평시에 전문화된 구호단체를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과거 전쟁에서 숱하게 재현되어 온 선량한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훌륭한 자선 정신을 열거하며 자신이 믿고 있는 인간의 선함과 인도주의적 정신을 자신의 책에 피력한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든 작은 기적들은 앙리 뒤낭의 글로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바람은 전장에서 중립적 지위를 가지고 구호 활동을 펼치는 단체 적십자사 설립과 제네바 협약으로 실현된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 희생자 보호를 위한 국제조약으로 첫 협약이었던 1864년에는 12개국 정부가, 현재는 196개국이 가입해있다고 한다. 


​그 어떤 철학적인 논의보다도 인간의 본성을 더욱 분명하고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는 앙리 뒤낭의 <휴머니타리안>.

이소노미아는 편집 여담을 통해 지금처럼 혐오와 적대감이 난무한 시대에 그보다 더 극한의 전시상황에서 '우리 인류가 광기에 운명을 맡기는 대신 인간적인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고 다같이 노력한 증거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글을 읽고 이 책의 내용을 곱씹어보니 마음이 벅찼다. 그리고 그간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이탈리아 북부 마을의 부녀자들처럼, 타인을 좀 더 환대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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