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
하재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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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인간, 여성으로 떠올리게 된 것은 결혼 이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아이를 낳은 직후 부터이다.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무시며 나와 갓난쟁이를 돌보셨다. 외할머니가 엄마와 나를 위해 하셨던 일들을 당신도 지금 똑같이 하고 있다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의 딸로만 살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도 하셨다. 나는 상상하지 못하는 시절, 그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에게 호된 시집살이는 없었지만 대신 무뚝뚝하고 언어폭력을 일삼는(그것이 폭력인지도 모르는) 그저 성실이 무기였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의 대화 소재로 종종 소환되었다. 엄마가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 할 때 마다 ‘힘든 아빠 곁에서 떠나지 않고 우리를 잘 키워줘서 고마워.’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의 지난했던 세월이 장성한 자식들의 안녕이나 행복으로 보상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나 싶네,,,’라고 말하던 쓸쓸하고 공허했던 엄마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그 시간을 떠올렸다. ‘엄마’에 대해 그리고 그녀에게 영향 받은 ‘나’에 대해 생각했다.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내가 엄마에게서 수용하고 싶었던 것 또 배반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고민했다. 엄마를 무척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늘 생각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셨던 외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남동생을 낳은 일까지. 엄마가 더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지 못해서 지금의 힘듦을 자초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엄마 역시 ‘내가 바보였지,,,’라는 말로 자신의 선택과 인생을 부정했지만 책을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엄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매순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얄팍하고 건방졌던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이제야 반성한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야기는 단지 우리의 과거, 경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거나 해방일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라고 했다. 엄마에게 다시 자신이 되는 시간을 선사하겠다. 딸, 아내, 며느리, 엄마를 거쳐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된 ‘자신’을. 듣기 힘들고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을 묻고 경청하면서 말이다. 고선희님의 용기 있는 고백과 작가의 치열한 분투 덕분에 나도 나의 엄마도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또한 딸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새로운 과제도 주어졌다.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는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것들이 나와 딸과의 관계에서는 더 쉬워지고 새로워지길 바라며 ‘모녀 관계’의 확장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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