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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무려 3년 만에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소설이 출판 된다고 해서 얼마나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오쿠다 히데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로, 내가 느끼기에 그의 작품에는 항상 유머가 깃들어있고 가볍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아 항상 내게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도 포스가 느껴지는 것이, 처음부터 뭔가 범상치 않은 작품임을 눈치 챘다. 더구나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리얼리티 서스펜스 소설. 과연 오쿠다 히데오식 서스펜스 소설은 어떤걸까하는 기대를 안고 책장을 넘겨나갔다.
1,2권 도합 900쪽에 달하는 내용을 짧게 요약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 책은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도쿄대생ㅡ그러나 시골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불우한 일을 겪고 사회의 더러운 면들을 보며 자란 한 청년의 테러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시마자키 구니오의 테러는 어찌 보면 사회에 대한 하극상처럼 보이나 나는 그것을 과감한 도전이라 칭송하고 싶다. 비록 마르크스니 사회주의니 하는 것들에 그닥 관심은 없지만, 불평등한 부의 분배나 약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서는 나도 불만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다보니 어느새 시마자키의 생각에 동화되었고, 이내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의 발칙하고도 과감한 테러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과연 그 결말은 어떤 식이 될까하는 궁금함에 손에서 잠시라도 책을 뗄 수가 없었을 정도다.
살인, 폭탄테러, 마약중독, 매춘... 그 동안 오쿠다 히데오의 책에서 보기 힘들었던 어덜트하고 음울한 소재들이 잔뜩 등장함으로 인해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면야. 가히 기립박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있었던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지라 일본의 실제 지명 등이 언급되어 작품의 사실성을 높혀 주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나는 일어일문과를 지망하고 있고 일본에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실제 지명 등이 거론되는 점이 굉장히 좋았고 동시에 유익하게 느껴졌다.) 소설 자체의 몰입력도 뛰어났다. 또, 마르크스니 프롤레타리아니하는 사상적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쉽게 술술 읽히는 점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처럼 완벽해 보이는 소설에도 약간의 아쉬운 점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결말. 여운을 주긴 했지만... 읽는 동안 주인공 시마자키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했던 나에게 있어서, 이 소설의 결말은 충격적이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정말 ‘이대로 끝내도 좋은 것인가’하는 생각에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상실감에 멍~하니 앉아 있었을 정도였다.
한 젊은이의 희생과 노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묻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묻히고 있다. 갓 스물을 넘긴 시마자키가 느꼈을 사회에 대한 환멸과 씁쓸함에 어느정도 공감하며... 이 올림픽의 몸값이란 책은, 가볍게 읽히지만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해준 작품이었다.
밝다고 하기에도 뭐하고 어둡고 암울하다고 하기에도 뭐한 분위기지만 오쿠다 히데오에게서 이런 분위기의 작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했고, 앞으로도 오쿠다 히데오의 추리, 범죄소설을 가끔씩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