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헤어질 때 왜 사요나라라고 말할까 - 사요나라에 깃든 일본인의 삶과 죽음, 이별과 운명에 대한 의식세계
다케우치 세이치 지음, 서미현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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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선물로 준 책. 읽기는 작년 12월 초에 다 읽었지만 이제야 감상을 적는다. 그 말인 즉, 무슨 내용이었는지 거의 다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네이버 사전에 일본의 작별인사 사요나라를 검색해 보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감동사

1. 안녕, 안녕히 가십시오[계십시오]; 안녕히 가세요[계세요]((헤어질 때의 인사말)).

 

접속사

그러면;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기존의 그러면, 그렇다면이라는 뜻의 사요나라가 어쩌다 헤어질 때의 인사말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사요나라그렇다면이 아니라 꼭 그래야 한다면이라는 의미로 파악할 때가 그렇다. 이별의 상황을 마주하고 이를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한 뒤, 이별을 운명으로 여겨 꼭 그래야 한다면이라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P.136

 

예부터 일본인은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면 그것을 꼭 그래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면이라는 식으로 조용히 체념하고 과감하게 이별에 대처해 왔기에 사요나라를 이별의 표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P.144

 

사요나라를 그렇다면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인 꼭 그래야 한다면으로 이해한다면 상황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체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인이 이별을 고했고 아무리 연인을 붙잡아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꼭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자라는 뜻에서 사요나라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런 체념식 이별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해석된다.

 

다나카 히데미쓰는 사요나라-꼭 그래야 한다면에 대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평가를 내렸다. 하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 단호하게 헤어지는 깔끔함과 아름다움의 사요나라이고, 또 하나는 상황에 저항하지 않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패배의 무상관’, ‘천박한 허무주의의 사요나라이다. -P.164

 

언어의 어원을 철학과 연관 지어 파헤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롭고 새로웠다. 그리고 우리의 안녕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 탈 없이 편안히 지내라는 뜻의 안녕’.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방을 걱정하는 다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일본인이 ‘사라바, 사요데아루나라바(그러면)’이라 하고 헤어지는 것은, 엣 ‘일’이 끝났을 때 잠깐 멈추어 서서 ‘그러면’이라고 확인하고 정리한 뒤 새 ‘일’과 마주하려고 하는 마음가짐,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 P35

‘죽음을 애도하다’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도무라우弔う’이다. 이는 ‘묻다問う(도우)’와 ‘방문하다訪う(도우)’에서 온 것이다. 죽은 자의 세계를 방문하여 죽은 자의 생각을 물음을 의미한다. 상가에서 밤을 새며, 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화제로 삼는 것도 그러한 행동이다.
……
죽은 자의 ‘저 편 세계’는 ‘애도하는 자’ 안에 있음을 드러내 주지 않는가.
- P61

어느 방면에서든 진실을 철저히 아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처럼 상쾌한 가을 풍경에 심취해 기분 좋게 살아가는 것도, 내일을 모르기에 가능하다고도 한다. ‘내일 일을 염려 말라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라는 성경 구절도 소극적인 대처방법이기는 하나, 의미심장한 말이다. - P67

즉 ‘지금’을 긍정하지만,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기보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천해 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 P131

‘이자’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작심하고 행동할 때 강조를 위해 사용하는 말이며, ‘요시’는 만족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며 허용을 할 때 쓰는 말이다. - P133

앞서 ‘사요나라’를 깔끔한, ‘동양풍의 체념의 미’라고 칭송했던 그가 이번에는 ‘패배적인 무상관’, ‘허무한 이별’로 표현하며 ‘사요나라를 비판하고 있다. - P154

다나타 히데미쓰가 ‘사요나라’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내린 것도 결국 이 ‘스스로’와 ‘자연스레’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나카가 반복해서 말했던 ‘체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큰 힘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적극적,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결연한 ‘체념’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그 힘의 탓으로 돌리고 비굴하게 따르는 ‘패배의 무상관’으로서 체념인가에 대한 두 가지 평가인 것이다. - P175

말하자면 필자는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의 한 방울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 한 방울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오직 나 자신뿐이기 때문에 몇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몇만 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의연히 흐르는 큰 강물 가운데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으며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의 존재는 작은 한 방울 물이지만, 사실은 더 큰 존재에 속하는 ‘한 방울’이다. - P181

즉 이 세계의 보편적, 집단적인 논리, 원리를 따를 때에는 ‘모노’라고 말하고, 그 때, 그 장소에서의 1회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고토’라는 언어를 쓴다고 아라키 씨는 지적했다. - P191

구키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우연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정한 뒤, 그 뒤에 이별이 얽혀 펼쳐지는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에 대해 독자적인 사색을 전개했다. - P196

그러나 ‘미태’와 ‘패기’만을 지닌 에로스는 자칫하면 ‘이키’의 반대인 ‘야보(촌스러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요소, 가장 중요한 ‘체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됨을 구키는 설명하고 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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