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원인과 결과, 영향과 파급 효과를 고려하는 데 그가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을 감안하여-사려 깊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백작의 경험에 의하면,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왜냐하면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을 몰아가려 하지만,
논리라는 것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분명한 이해나 확신의 상태로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리는 그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결국 그들은-마치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가장 사소한 변덕에 영향에,
그리고 성급하고 무모한 행동의 유혹에 노출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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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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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주의이긴 하지만, 영화는 이미 개봉을 했고 캐롤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의 얼굴이 뇌리에 너무 콱 박혀버려서 개인적인 이미지를 갖기는 좀 어려웠다. 사실 너무 잘 어울리기도 한다. 다만 내가 떠올린 테레즈와 루니 마라의 이미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루니 마라의 그 형형한 눈빛이 아니었다면 이 캐스팅은 실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작보다 영화의 평이 더 좋은 듯하니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이 주요 소재이다. 동성애에 대한 어떤 관점이나 내 나름의 주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좀 독특하게 다가왔던 것은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행동, 대사들을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이다. 사랑에 빠지는데야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냐마는 캐롤의 앞뒤 없이 돌발적으로 내뱉는 대사와 테레즈의 열정 넘치는 행동거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답답한 표현들이 그들의 애정을 들여다보기엔 적절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대상이 누구인가를 떠나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자 했다면 캐롤에게 이끌리는 테레즈의 감정에 따라갈 만한 뭔가가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뒷받침할 논리적인 근거를 찾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캐롤은 아름답고 우아한 매력 넘치는 금발 여인이고, 그 옆에 질투심과 승부욕을 부추기는 애비라는 존재도 있다. 두 사람의 세계에 대척점이 될 하지와 린디라는 현실도 존재한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철없이 떼쓰기엔 클래식한 장벽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인 이런 유의 이야기치곤 반전의 해피엔딩(?)이 존재하기에 작가는 출간 당시 많은 팬 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작품의 완성도에 열광했다기 보다 힘든 현실 중에 목격한 꿈같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읽을 땐 분명 꽤 괜찮네~라고 생각했는데 리뷰를 쓰고보니 어째 트집만 잔뜩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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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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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된 책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에 살던 동네 도서관에도 이사 온 곳의 도서관에도 책은 없었다. 결국 중고 매매로 구입한 책을 손에 넣게 되었는데, 책 상태가 워낙 좋아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줄었다고는 하나, 나 이외에도 책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을진데 이런 순간엔 괜스레 뿌듯하면서 흐뭇하다.

 

미스터리 작품이 밝고 명랑할 수는 없겠지만, 미치오 슈스케의 이번 작품은 웃음이 많이 묻어난다. 주인공들의 직업은 경찰도 탐정도 아니며, 작품 전체를 둘러봐도 시체나 핏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여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조용히 사건을 이해하고 수습하려고 하는 어설픈 중고물품 판매상들이 등장할 뿐이다.

 

선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은 결과가 나쁠 수가 없다. 정초부터 쏟아진 일더미와 괴팍한 인간들에게 시달리느라 지쳐있는 내게 휴식 같은 시간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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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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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것 같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지만 스티븐 킹의 글빨은 시종일관 재미나다. 복수라기보다는 인과응보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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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하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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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는 봉래에서 자랐다. 태과였기에 십이국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역사나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이나 마을의 단위, 결혼이라든가 분가, 독립 등의 풍습에서부터 화폐, 도량형, 심지어 호칭에 대한 것까지 아는 것이 전무하다. 어느날 갑자기 그런 낯선 나라의 왕이 되다니 얼마나 어이없고 막막할까. 게다가 이전 여왕들의 치세가 불안정했던 탓에 나라는 황폐해졌고 백성과 신하들의 기대도 바닥이다. 그래도 요코는 알고자 노력한다. 나라를 이해하려 하고 백성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무엇이 먼저인지, 어떤 가치를 위에 두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생각한다.

 

 상 권에서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 스즈와 쇼케이가 등장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보려 하지 않고 뭔가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처한 현실에서 불평불만만 가득하여 원망만 늘어놓는 정말 짜증 나는 캐릭터다. 상 권을 읽는 동안 두 캐릭터 때문에 열불이 날 지경이었지만 점차 변해가는 그들을 보면서, 성장하는 요코를 보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 권 뒷부분에 나오는 민중 봉기 장면과 진압에 이르는 과정이 하이라이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성장한 스즈, 쇼케이, 요코의 활약에 괜스레 내가 흐뭇했다.

 

 이 시리즈를 보다 보면 전투나 전쟁 장면, 반란 및 민란 진압 장면 등이 종종 나오는데 작가는 그런 부분에 대한 묘사를 다소 두리뭉실 그려내고 있다. 정말 영리한 수법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자신이 없는 부분에서 적당히 치고 빠지는 스킬을 구사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할 법한 음모나 전쟁 씬처럼 묘사를 하려고 했다면 곳곳에 허점과 오류가 드러나고 독자들에게 뭇매를 맞았을 터인데... 다소 허술해 보일 수 있는 이런 작법조차 이 시리즈의 매력처럼 느껴진다. 전투, 전쟁 장면 등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십이국기 3편에 이어 4편 역시 통치자의 자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요코는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었고 그 부름에 응답했다.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경의 백성들은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아직 간절하지 않은가? 그래서 들리지 않는 건가? 재미나게 두 권의 책을 읽어냈지만 연이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우울해져 버렸다.

"인간은 불행을 경쟁하고 마는구나. 사실은 죽은 사람이 가장 가여운데, 누군가를 가여워하면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자신이 가장 가엾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랑 똑같이 기분 좋은 일인지도 몰라. 자신을 동정하고, 남을 원망하고, 정말로 우선해야 할 일에서 도망친 채로……. "

"응. ……맞아."

"누가 틀렸다고 알려주면 화가 나. 이렇게나 불행한 나를 또 나무라는 건가 싶어 원망스러워."

- p. 299~300


"이후로 예전, 제전, 그 밖에 여러 규정이 있는 의식, 타국에서 온 빈객을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 복례를 폐지하고, 궤례와 입례만 허락한다."

"주상!"

재보의 제지에 왕이 대답은 퉁명했다.

"이미 정했다."

"업신여겨졌다고 화내는 자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라는 거지?"

"주상!"

"남에게 고개를 숙이에 함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해야 안심하는 자 따위 내 알 바가 아니다."

- p.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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