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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하 ㅣ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평점 :
요코는 봉래에서 자랐다. 태과였기에 십이국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 역사나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이나 마을의 단위, 결혼이라든가 분가, 독립
등의 풍습에서부터 화폐, 도량형, 심지어 호칭에 대한 것까지 아는 것이 전무하다. 어느날 갑자기 그런 낯선 나라의 왕이 되다니 얼마나 어이없고
막막할까. 게다가 이전 여왕들의 치세가 불안정했던 탓에 나라는 황폐해졌고 백성과 신하들의 기대도 바닥이다. 그래도 요코는 알고자 노력한다.
나라를 이해하려 하고 백성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무엇이 먼저인지, 어떤 가치를 위에 두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생각한다.
상 권에서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 스즈와 쇼케이가 등장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보려 하지 않고 뭔가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처한 현실에서 불평불만만 가득하여 원망만 늘어놓는 정말 짜증 나는 캐릭터다. 상 권을 읽는 동안 두 캐릭터 때문에 열불이 날 지경이었지만
점차 변해가는 그들을 보면서, 성장하는 요코를 보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 권 뒷부분에 나오는 민중 봉기 장면과 진압에 이르는 과정이
하이라이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성장한 스즈, 쇼케이, 요코의 활약에 괜스레 내가 흐뭇했다.
이 시리즈를 보다 보면 전투나 전쟁 장면, 반란 및 민란 진압 장면 등이 종종 나오는데 작가는 그런 부분에 대한 묘사를 다소 두리뭉실
그려내고 있다. 정말 영리한 수법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자신이 없는 부분에서 적당히 치고 빠지는 스킬을 구사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할 법한 음모나 전쟁 씬처럼 묘사를 하려고 했다면 곳곳에 허점과 오류가 드러나고 독자들에게 뭇매를 맞았을
터인데... 다소 허술해 보일 수 있는 이런 작법조차 이 시리즈의 매력처럼 느껴진다. 전투, 전쟁 장면 등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십이국기 3편에 이어 4편 역시 통치자의 자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요코는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었고 그 부름에 응답했다.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경의 백성들은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아직 간절하지 않은가? 그래서 들리지 않는 건가?
재미나게 두 권의 책을 읽어냈지만 연이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우울해져 버렸다.
"인간은 불행을 경쟁하고 마는구나. 사실은 죽은 사람이 가장 가여운데, 누군가를 가여워하면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자신이 가장 가엾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랑 똑같이 기분 좋은 일인지도 몰라. 자신을 동정하고, 남을 원망하고, 정말로 우선해야 할 일에서 도망친 채로……. "
"응. ……맞아."
"누가 틀렸다고 알려주면 화가 나. 이렇게나 불행한 나를 또 나무라는 건가 싶어 원망스러워."
- p. 299~300
"이후로 예전, 제전, 그 밖에 여러 규정이 있는 의식, 타국에서 온 빈객을 맞는 경우를 제외하고 복례를 폐지하고, 궤례와 입례만 허락한다."
"주상!"
재보의 제지에 왕이 대답은 퉁명했다.
"이미 정했다."
"업신여겨졌다고 화내는 자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라는 거지?"
"주상!"
"남에게 고개를 숙이에 함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해야 안심하는 자 따위 내 알 바가 아니다."
- p.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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