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이토록 무서울 수가... 요즘 세상에선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운 게 실업인 듯 하다. 특히 나이 좀 들어서 직장을 잃고, 고정 수입이 없어지며, 소속될 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진정 두려운 일일게다.


요새는 60이 넘어도 노인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정정하다. 잘 먹고 잘 관리해서 그런지 실질적인 노인이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연령대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멀어진지 오래다. 하지만 사회와 기업이 정해놓은 정년의 시점은 아직 그대로인지라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알랭은 57세다. 아직 한창 일할 수 있고 갚아야 할 대출금도 많이 남아 있다. 죽는 소리 하는 자식들에게 어렵지 않게 돈도 빌려주고 사랑하는 아내가 다 떨어진 스웨터 대신 유행하는 새옷을 사 입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은 알랭의 바램과는 반대로 돌아간다. 새로 응시한 회사에 취업의 가능성이 조금 보이자 알랭은 가족들의 원망과 반대를 무릅쓰고 돈과 시간, 노력을 모두 쏟아붓는다. 그런데 채용될 사람이 이미 내정되어있다는 얘길 듣고 알랭은 치솟는 분노 속에서 위험한 도박을 계획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이던가... 한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눈 뜨면 갈 곳이 있어야 한다고. 쌓인 일도 버겁고, 상사는 꼴보기 싫어 죽겠고, 얌체 동기와 뺀질이 후배가 너무 싫어 회사 다니기가 너무 끔찍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좋아죽겠어서 회사를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그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 사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기분, 유명 예술가의 작품과는 격이 다르겠지만 엑셀 수식을 만들고 기획서를 쓰고 외부 업체와의 미팅을 잡는 등의 일들이 뭔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충족감을 가끔 주기도 한다. 많지는 않아도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기쁨도 마찬가지다. 이걸 위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힘들게 마치고 스펙 쌓는다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기웃거려보고 영어 시험도 보고 그랬지 않던가. 지금보다 좀 더 어린 시절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여행을 떠난 적도 두어번 있었지만, 그래도 직장이 주는 혜택과 고마움을 전혀 모르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내가 아무리 그 소중함과 중요한 역할을 알았다 해도 내 상사가, 내 회사가 혹은 내 건강이, 내 주위 여건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아니니 말이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죽어라 일하자니 가족이 멀어지고 내 시간이 사라진다. 가족을 돌보고 내 시간을 챙기자니 회사가 등을 떠민다. 어찌 살아야 하나... 이것만은 그 때 그 시절의 선생님도 답을 주실 순 없을 것이다. 알랭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마냥 책 속의 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작가는 알랭의 심정도, 가족의 심정도 민망하리만치 세밀하게 묘사해 두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다 그럴만한 사연으로 그럴만하게 행동한다. 어디 하나 튀는 구석 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기름종이를 올리고 밑그림을 베껴 그리듯 고대로 그려냈다. 알랭에게 좋은 결말이 다가오기를, 다시 안정되고 행복하고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랬지만 역시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다 가진 자, 최고 권력을 지닌 자로 대표되는 회장의 모습도 그닥 행복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원망하고 싶다. 그 마저도 할 수 없다면 거대한 피라미드 조직의 마지막 계급으로 기껏 일개미에 불과한 우리들은 너무 불쌍하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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