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있었다
문필연 지음 / 북스피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인터파크가 주최한 K-오서 어워즈 미스터리 부문 당선작이다. 국내 미스터리물에 신인 작가 등, 평소 기피하는 많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북스피어 출판사에 대한 애정으로 구입한 책인데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작은 꽤나 흥미로웠다. 한때 잘 나가던 랜드마크였던 삼일주택의 몰락에 관한 소개, 그 근처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 그 주택에 얽힌 여러가지 흉흉한 소문과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몰래 취재를 시도하는 PD와 경찰의 실종 등. 그런데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삼일주택에서 벌어지는 사악한 범죄(충분히 예상가능한...)와 혼과 영의 분리, 죽은 자와 산자의 구분, 영매의 존재와 역할, 삼일주택 거주자들에 관한 사연과 담합에 관한 이야기가 주요 골자인데 어떤 한 부분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작가가 작품에 담고 싶어하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이 안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본인이 하고픈 얘기만 하겠다면 걍 일기를 쓰는 게 낫지.


책을 덮고 난 후에 느낀 것은 완결이 안 된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는 것이다. 삼일주택 자체와 관련 소문에 대한 설명만으로 많은 부분을 할애한 후 공모전 마감 날이 촉박해지자 서둘러 마무리해서 끝내버린 듯 하다. 초중반까지 잘 끌어오다가 허무하게 한방(?)으로 끝내버리고, 진짜 사건에 대해선 인물들의 대화 조금과 지하실 묘사 몇 줄로 넘어가고선 제목은 낚시하듯 저렇게 짓다니 다소 성의없게까지 느껴지더라. 결말 즈음에 경찰들은 삼일주택 관련 사건들을 결국 밝혀내지도 설명하지도 못 하고 미결로 남겨 두었는데 작가가 이 작품까지 그리 만든 듯 하다. 삼일주택에서 애초에 어찌 그런 범죄들이 시작되었는지, 굳이 혼과 영의 분리에 관한 설명에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그 귀신의 존재를 부각시킨 이유는 뭔지, 삼일주택 거주자들이 어찌 그런 일에 연류되어 담합하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범행 장소를 위시한 배경 설명에만 충실할 뿐 동기도 없고 트릭(?)에 관한 설명도 없고 캐릭터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며 사건진행 부분은 아예 건너뛰어 버린다. 작가는 평소에 관심이 많던 분야의 소재들을 모두 끌어다가 이 책에 쏟아부었나보다. 좀더 보충하여 각각 다른 책으로 써낼 욕심은 없었는지. 게다가 나 혼자 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는데, 전체적인 작품의 배경이 분명 한국이란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아니면 다른 나라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말주변이 부족하여 적절한 단어를 골라 납득할만한 설명은 못 하겠는데 책을 읽는 내내 일본 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스런 것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가끔 신인작가의 데뷔작이나 공모전 당선작을 읽고 실망할 때마다 그러려니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독자가 신인작가의 책이라고, 데뷔작이라고 책 값을 할인 받나? 절대 아니다. 유명 작가의 대작도 동일하게 책정된 값을 주고 구매하며 바쁜 일상 중에 똑같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책을 읽는다. 이미 시장에 나온 이상 그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고 본다.


내가 뭐라고, 너무 지적질 일색인 듯 하여 죄책감이 좀 들었다. 리뷰를 쓰지 말고 걍 지워버릴까 하다가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고 걍 쓰기로 했다. 작가는 링 밖에서 독설가였다고 스스로 말했다. 링 위의 선수에게 그것밖에 못 하냐고, 그의 스피드를, 스텝을 조롱하고 힐난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글 한줄 쓰지 못하지만 독자라는 역할로 살아가는 이상 링 안의 선수에게 손가락질 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중반까지는 꽤 재미있었기에 더 많이 안타깝다. 미안한 말이지만 작품 자체보다 작가의 말이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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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필연 2015-02-2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을 쓴 사람입니다.
연휴에 구글링을 하다가 코뿔소님께서 쓰신 서평을 읽고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 소설에 관심을 가져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같이 많은 미디어가 난무하는 시대에 소설책을 읽는다는 것은,
게다가 이름도 없는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말씀처럼 신인의 책이라고 값이 싼 것도 아니기에 코뿔소님이 보여주신 성의는
실로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코뿔소님께서 지적하신 여러 문제점들은 가슴 깊이 새겨넣겠습니다.
제 의도가 님에게 충분히, 잘 전달되지 않은 점,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거나, 능력이 미흡했던 까닭이겠지요.
다만, 코뿔소님의 예상처럼 마감일에 쫓겨 서둘러 마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만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공들여 쓴 것이고, 대사 하나, 단어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거의 외울 정도로 손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걸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아디까지나 쓴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큰 실망을 하신 것 같아, 앞으로 잘 지켜봐 달라고 말씀 드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제 이름이 어딘가에 있으면
그냥 `저 친구 아직도 글 쓰나 보네.`하고 눈여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꼭 그런 날이 오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코뿔소 2015-02-23 14:30   좋아요 0 | URL
보시고 고까운 마음에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어줍잖은 리뷰가 상처는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꾸준히 작품 활동 하시길 바라며, 계속 작가로 정진한다면 꼭 대작을 집필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개 독자 하나가 쓴 글에 이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 진심을 전하고자 하시는 모습을 보니, 단지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쓰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문필연 2015-02-2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흉터많은 인생에 이정도 상처야 상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대작은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대작이 어떤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코뿔소님의 서평을 읽고
다른 건 몰라도 님이 인정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군요.
그날까지 눈 맑은 독자로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코뿔소 2015-02-25 11:31   좋아요 0 | URL
눈 맑은 독자... 제게도 큰 숙제를 주셨네요.
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문필연님의 재미가 가득한 소설 역시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