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차일드 44]로 유명한 작가의 신간이다. 일단 난 작가의 대표작인 [차일드 44]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그건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좋은 작품, 작가의 대표작을 읽는 건 좀 아껴두는 편이 낫다.
지인으로부터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무척 좋다는 얘기를 듣고 리뷰 쓰기가 망설여졌다. 그 지인 역시 이 책이 별로라 해서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하지만, 대세와 반대되는 의견을 공개한다는 건 늘 무섭다.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니 맘에 안 들면 더는 읽지 않기를 바랍니다.
톰 롭 스미스의 장기라고 하는 이른바 '폭풍같은 전개'까지는 알겠다. 순서대로 이야기하겠다며 털어놓는 엄마의 이야기엔 도통 전개랄 것도 없이 답답하기만 한데 페이지는 휙휙 넘어가 책의 3/4이상이 지나갔더라. 사실 그쯤되자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거 이러다 [셔터 아일랜드]짝 나겠는걸 싶어서 말이다. 아, 그런 결말 너무너무 싫다. 그걸 반전이라 부른다면 할말 없지만 그런 마무리만큼 성의 없는 건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섬세한 심리 묘사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박한 장면도, 머리 속으로 그려볼 법한 멋진 캐릭터도 다 의미없게 만들 뿐이다. 예전에 김정은과 이서진이 나온 드라마가 있었다. 사실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 제목도 기억이 안나는데, 암튼 그 드라마 말미에서 모든 것이 김정은이 꾼 꿈이었다고 나와 애청자들을 여럿 열받게 했다고 들었다. 내가 보기엔 이건 같은 거다. "식스 센스"같은 반전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건 반전이 아니라 전체를 쥐고 있는 키와 같다. 그게 있음으로 해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기에 [셔터 아일랜드]나 아까 언급한 드라마와는 차별점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반전의 남발이 반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반전을 제외해도 그 자체로 이야기가 훌륭헸다. 반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이야기가 있었다해도 어지간한 미스터리들 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얘는 아니다.
엄마 캐릭터도 비호감이고 아들내미도 맘에 들지 않더라. 뭔가 드러날듯 말듯 감질나는 엄마의 이야기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쏟아부은 것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게 엄마의 심리를 묘사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 부분에서 등장한 내용이나 엄마의 태도가 진실을 밝히는 데에 크게 기여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가족 내부의 비극과 진실에 대한 부분이 작품에서 의미를 갖기 원했다면 후반부 내용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한다. 앞부분은 쓰잘데기 없이 길고 후반부 페이지들은 믿을 수 없을만치 설렁설렁 마무리 되었다. 반전으로서의 극적 효과를 얻고자 한 의도라면 좀 더 임팩트 있고 짧게 마무리 되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게 마무리 되었다. 구절판 같이 손이 많이 가고 재료마다 따로 손질해 준비해야 하는 요리를 하다가 손님 올 시간이 닥치자 할 수 없이 다 때려넣고 볶음밥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이 책이 작가의 실화에서 비롯된 작품이란 것을 알았다. 타고난 작가라 어머니의 이야기가 책으로 쓰기에 좋아 집필을 시작했지만 쓰다보니 가족의 안타까운 경험을 너무 드러냈다 싶은 죄책감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마무리가 못내 아쉽다 보니 말만 길어진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책으로 펴내는 일본 작가들의 책을 읽은 기분이다. 빨리 읽히고 재미도 그럭저럭 있지만 나중이 되면 어떤 책이 무슨 내용인지 별로 기억나지 않는 정도의 이야기. [차일드 44]를 아직 읽기 전이고, 그 후속작 2권이 곧 나온다니 작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