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한 공익광고가 떠올랐다. 어스름한 저녁 귀가 길의 여성이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한 남자가 잰걸음으로 그녀를 쫓아오고 있다. 여자는 두려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며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남자 역시 걸음이 빠르다.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여자는 자기집 현관 문을 서둘러 열려고 하는데 남자가 가까이 다가온다. 여자는 무척 놀라서 소리라도 지르려는 듯 보이는데 갑자기 옆집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 아이가 '아빠!"하고 외치며 남자의 품에 안긴다. 그 남자는 이웃집에 사는 아이 아빠였던 것이다.


이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남 얘기같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옛날 옛적에는 누구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조차 다들 알고 살았을 정도라고 하니 요새같이 흉흉한 범죄 사건들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 집에서는 6년째 살고 있으니 앞집에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시다는 정도는 알지만, 그 이전에 2년마다 쫓겨가듯 살았던 집들은 옆집, 윗집에 누가 살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오래 살다보니 몇 번 우연히 마주쳐서 앞집 할머니 얼굴을 알게 된 것일 뿐 어떤 교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집이란 곳은 하늘 아래 내 한 몸 누이고 가족들과 더불어 휴식을 취하는 보금자리임은 분명하지만, 빌라, 맨션, 아파트 등으로 주거 형태가 변하게 되자 더이상 내 것 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윗집 아저씨 핸드폰 알람이 언제 울리는지, 아래층 부부가 매일 밤 야식으로 뭘 만들어 먹는지, 앞집 할머니가 최소 2명 이상의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나는 다~ 알고 있다. 최근의 주거 공간은 그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 문제로 아귀다툼을 하고 편리한 주거 생활을 거들어 주는 경비원이나 관리인들을 노예 취급하며 쓰레기 처리 문제, 음식 하는 냄새 등 여러가지 문제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랜드맨션은 주거에 관한 모든 문제들의 총체적 난국 같은 상황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살고 있어 더 다양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 정도되면 집값이 떨어질 법도 한데 신축하는 2관, 3관의 분양도 썩 잘 되어가는 듯 보인다. 사체유기, 스토킹, 보이스 피싱 등 다양한 범죄가 그랜드맨션 주민들에게 벌어지고 작가는 서술트릭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오리하라 이치의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는데 딱히 이게 최고다라고 할 만한 작품은 없는 듯 하다. 국내에서 많이 사랑받은 작품들이 꽤 있다는 것도 알지만 별로 대단치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특히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어 작가의 스타일을 아는 독자라면 결말쯤은 금방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읽을 책들은 넘쳐나니 앞으로 오리하라 이치의 책은 고만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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