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그는 어찌나 자기 생각에 열중해 있었던지 나에게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그 게이 오를로프 생각을 안 한 지가 너무나 오래되어, 그 여자에 대한 모든 추억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면서 마치 바닷물처럼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거기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 p. 63 ]


[우리는 공원들을 지나 뉴욕 가로 접어들었다. 거기 강변 도로의 나무들 아래서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벌써 나의 삶을 다 살았고 이제는 어느 토요일 저녁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떠돌고 있는 유령에 불과했다. 무엇 때문에 이미 끊어진 관계들을 다시 맺고 오래 전부터 막혀버린 통로를 찾으려 애쓴단 말인가?   - p. 65 ]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사진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 p. 75~76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