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키메]

노조키메 ㅣ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믿고 보는 미쓰다 신조의 신간이다. 작가 시리즈는 내 취향이 아니다만 도조 겐야 시리즈는 열광적으로 좋아한다. 이 책의 경우 도조 겐야 시리즈가 아님에 반신반의 했었는데,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미쓰다 신조의 강점은 민속학적 배경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추리에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 특유의 역사적, 지형적, 정서적 요소들을 착실히 채워넣은데다가 논리적으로도 납득이 갈만하게끔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무서운 이야기들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괴담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얘기인데, 코미디의 근원은 비극이라고 한다. 공포의 시작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진정한 공포의 탄생과 그것이 주는 위력 외에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나 갑자기 큰소리를 내는 등의 효과만으로 공포 영화라 우기는 것들도 많다. 피칠갑된 장면과 속 메스껍게 만드는 기분나쁜 순간들의 묘사만으로 괴담 혹은 기담이라 이름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괴담이 탄생하고 공포를 느끼게 되는 모든 과정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어둡고 비열하고 잔인한 면면들이 괴담의 시발점이 되고 공포의 근원이 된다.

사실 괴담이라는 것은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무슨 일이 생겼었는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도 그만이다. 인과관계 따위를 알려줄 인물들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고 이런저런 말들만 보태어져 실체가 되려 사라질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 괴담을 미쓰다 신조는 마치 무대에 올릴 연극처럼 완벽히 세팅된 장소를 만들어 그럴듯한 인물을 탄생시키고 전승되는 이야기에 뭔가 변곡점이 될만한 사건을 집어 넣는다. 그 어떤 사소한 말 한마디, 물건 하나 낭비하는 법 없이 알뜰하게 활용한다. 분명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이고, 믿거나말거나 한 이야기인데도 작가의 재주 덕분에 소름이 끼치고 괜시리 뒤를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하얀 종이 위에 나열된 까만 텍스트만으로 이런 기분을, 이런 리액션을 끌어 낼 수 있는 작품은, 아이맥스나 4D상영관에서 상영되는 블럭버스터 대작 영화에 견줄만 하다고 생각한다. 아, 나는 미쓰다 신조빠인가 ㅋㅋㅋ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노조키메'는 엿보는 존재이다. 담장 너머, 문간 옆, 창문 틈, 천장 구석 등에서 정체모를 시선이 끊임없이 쫓아다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 주된 골자이다. 알 수 없는 눈길을 계속 받는다는 설정 자체만으로 이미 섬뜩하다. 딱히 괴이한 존재는 아닐지라도 사방에 설치된 CCTV를 의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삶이 노조키메에게 쫓기는 이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오바인가? 나 역시 뭔가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CCTV의 존재는 늘 거슬린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