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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 하 -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작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건 일단 SF다. 불로화 시술(늙지도 죽지도 않는)을 통해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세상의
이야기다. 책이나 영화 상으로 보면 대단치 않은 소재일 수도 있지만, 이런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어 사람들이 영원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고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내용만 보자면 SF가 아니라 호러인가 싶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기에 인구의 수가 계속 증가한다는 데에
있다. 한정된 공간, 유한한 자원, 제한된 직장 등의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늘어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름과 탄력의 저하를
막는 시술로 70세에도 80세에도 처음 시술을 받은 그 나이의 얼굴로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생각, 감정, 취향 등은 노인의 것과
다를 것이 없기에 사회는 발전을 멈추고 퇴보하기 시작한다. 사회와 국가, 나아가 전 인류가 마치 혈관의 흐름이 막혀 죽어가는 사람처럼 위기와,
쇠퇴의 수순을 밟아가자 숨통을 틔워줄 새로운 법을 고안해낸다. 이른바 생존제한법이라는 것을 시행하여 불로화 시술을 받은 이들로 하여금 각 나라가
정한 삶의 기한이 끝나면 죽도록 하여 영생을 이어가는 것을 막아 사회에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를 불어넣고 사회, 경제의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그런
이야기다. 여기서는 일본이 배경으로 나오고 생존 기한 100년을 의미하는 백년법이 등장한다. 무지몽매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 앞의 혹 하는
불로불사라는 미끼에 빠져들어가 백년법 준수 조약에 사인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생에 대한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왜 죽이냐며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고 이른바 거부자가 속출하게 된다. 애초에 생이라는 건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엄청난 권력을 가졌어도 저 뒷골목의 노숙자와 다를 바 없이 때 되면 죽는 것, 그거
하나가 이 불공평한 세상에 유일하게 평등한 단 하나의 진실인데 그것에 손을 댄 인류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마지막 페이지가 읽는 내내
궁금하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 한살이라도 오래 사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꿈이었다.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지불했던 수많은
지도자들의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흔히 보톡스니 필러니 하는 시술들을 받는 주변인들만을 보더라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동안이
유행이고, 40세, 50세에도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에 매진하는 이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의약, 의료, 미용
분야에서 이토록 열심히 노력하고 막대한 투자를 해가며 연구하는 데 언젠가는 가능한 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
늙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가끔 궁금하다. 주름살 제거 수술과 보톡스로 팽팽한 중년 여배우의 얼굴을 바라볼 때 마냥
이쁘고 좋아보이기만 하던가... 자연의 법칙이니 뭐니 하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80세의
어머니가 20세처럼 팽팽한 얼굴을 하고 늦게 귀가했다고 잔소리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니, 20세의 얼굴을 한 80세의 어머니는 집에
있지 않고 아까 내가 입장하지 못한 클럽 안에서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불로불사라는 전설같고 마술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잘 그려낸 좋은 작품이다. 자연의 섭리일지 신의 뜻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상 가능한 형태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쉽긴 하다. 그치만 이는 피해갈 수 없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어떤 다른 결말이 존재할 수 있을까. 유사 아키히토의 말처럼 "이건 낙관적
예측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도박이지."
[ "요새는 다들 HAVI를 받으니 겉보기에는 다 같이 젊어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제각각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체험한 시대도
다르고요. 하지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다는 건 친구를 사귀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잖아요. 그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 상권 p.
72 ]
[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토는 왠지 수긍할 수 있었다.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단이 항상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내려진다는 법은 없다.
날마다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나 접했던 말들이 어느센가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훗날 돌이켜봐도 무엇 하나를 콕 집어 원인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다시 침묵이 흘렀다. - 하권 p.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