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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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담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기담이 뭔지 궁금해서 샀다. 근데 다 읽어보니 이건 기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연히 시계를 봤는데 11시 11분이었다거나,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던가 하는 일상의 작은 신기함을 담아낸 이야기라고나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썩 좋아하는 편이라 전반적으로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마지막 단편인 이름표 훔쳐가는, 말하는 원숭이의 이야기는 정말 깼다. 이건 뭐지... 실망할 뻔 했다. 한번으로 족합니다, 두번은 절대 그러지 마시길...

 

5개의 이야기 중 "하나레이 해변"이 제일 좋았다. 서핑을 하다가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그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열하며 슬퍼하는 것도 아니고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리는 것도 아니다. 아들이 죽은 그 해변에 매년 같은 시기에 찾아가 바다를 바라보고 책을 읽고 밥도 해먹으며 3주 가량을 보낸다. 아들의 시체를 확인시켜 준 경관의 말처럼 아들은 사람들의 오만과 이기, 사리사욕에 의한 죽음이 아닌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니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미움이나 원망의 마음을 담지 말라는 부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 경관의 말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어머니의 방식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 이런 방식도 있구나. 가까운 이의 죽음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런 식으로 소화하는 방법도 있구나 싶었다.

 

["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나는 그때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는 건 어쩌면 매우 흔한 현상이 아닐까라고요. 즉 그런 류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그 대부분은 우리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대로 흘러가버리죠. 마치 한낮에 쏘아올인 불꽃처럼 희미하게 소리는 나지만 하늘을 올려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 시야에 일종의 메세지로서 스르륵 떠오르는 거예요. 그 도형을, 그 담겨진 뜻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그리고 우리는 그런 걸 목도하고는, 아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참 신기하네, 라고 화들짝 놀라죠. 사실은 전혀 신기한 일도 아닌데. 나는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요. 어떻습니까, 내 생각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가요?"   - p. 41~42 ]

 

["대의가 어떻건 전쟁에서의 죽음은 양측이 각각 갖고 있는 분노나 증오에 의해 초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아요. 자연에 내 편 네 편 따위는 없습니다. 부인께서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가능하다면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아드님은 대의나 분노나 증오 따위와는 상관없이 자연의 순환 속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 p. 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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