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줌파 라히리의 2번째 책이다. 그녀의 책은 모난 데 없이 차근차근 흘러가다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한 방이 있다. 일상의 잔잔한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절대로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반복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삶을 묘사한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인물들이 걸치고 있는 옷, 먹고 마시는 음식에 대해 자세히 그리는 것도 아니다. 그네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하나하나 설명하지도 않는다. 결코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직장 동료의 집들이에 초대되어 예의상 둘러보는 집안 풍경처럼 무심한 듯한 구석이 있다. 그러다 독자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모든 긴장을 내려놓을 즈음에 심금을 건드리는 부분이 튀어나온다.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맞닥뜨리는 순간인지라 감동은 두배다. 번드르르한 말빨로 채워진 것도 아니고 알만한 수작을 화려한 미사여구로 감춘 문장도 아니다. 투박하다싶게 다듬어지지 않았고 거칠다 싶게 솔직하다. 무뚝뚝하고 말 수 적은 경상도 남자가 의외의 순간에 입을 열어 몇마디 한 게 마음에 와닿고 그래서 더욱 진실되게 느껴지는 그런 거??

 

단편집의 특징상 마음에 드는 작품과 덜 드는 작품이 존재한다. 표제작인 [축복받은 집]은 내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것은 책의 첫번째와 마지막 이야기였다. 순위를 매긴다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대륙 > 잠시 동안의 일 > 피르자다 씨가 저녁 식사에 왔을 때 > 섹시 > 센 아주머니의 집 > 진짜 수위(두르안) > 축복받은 집 = 질병의 통역사 = 비비 할다르의 치료기

 

책을 읽으면서 특히나 좋았던 부분은 따로 발췌해서 이곳에 옮겨 두곤 한다. 후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아, 이런 구절이 있는데 어느 책에 있었더라... 하는 경우도 있고, 그 책에 그런 표현이 있었지... 하면서 떠오를 때 찾아보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줌파 라히리의 책에서 그런 부분을 옮긴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하고 낯간지럽다. 이 부분 진짜 좋다~ 하면서 읽었는데도 막상 옮겨두려고 보면 뭔가 너무 평범하고 특별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잠깐씩 마음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정의 파도를 겪는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자연스레 잊고 살아간다. 작가는 그런 순간을 별 것 아닌 냥 툭 던져놓기에 날아온 돌멩이에 퍼져나가는 연못처럼 가슴 떨리다가 잠시 뒤면 진정된다. 이런 순간들이 살아가는 데에 작은 미소와 위안을 주고 잊혀지듯이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 문장들도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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