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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까마귀 1
마야 유타카 지음, 하성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전작인 [애꾸눈 소녀]를 썩 재미나게 보지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에 뒤떨어진 고립된 마을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신의 존재
등의 소재를 좋아하는 터라 혹시나 하면서 또 읽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이 혹시나~ 했던 일들은 언제나 역시나~ 로 끝난다.
일단 시작은 괜찮았다. 소재도 배경도 좋고 형제의 갈등이란 측면도 좋았으며 차분하게 진행되는 주인공의 시점도 괜찮았다. 깔아놓은 밑밥에서
야기되는 스산함이나 괴기스러움, 흥미진진한 전개는 아닐지라도 주인공의 심리적인 캐릭터를 잘 드러내주는 문장이나 이야기들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2권으로 넘어가면서 실망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상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흩어놓은 단서들을 한데 묶지 못 했고,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이란 것도 늘어난 고무줄같이 맥아리가 없고 녹아버린 팥빙수의 마지막처럼 싱거웠다. 애초에 메르카토르라는 캐릭터의 등장이나
카인과 아벨이라는 거창한 이름들이 등장했을 때부터 작가가 본인의 능력으로 감당하지 못 할 과대포장을 한 듯 했는데 이 역시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내내 텍스트화 된 범죄들이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하지 못 하고 등장인물들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순간에도 조여오는 듯한 긴박함 한조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고립된 마을의 정서나 유일무이한 절대권력 신앙의 존재 등에 대한 부분을 줄이고
형제의 갈등에서 비롯한 심리적인 면에 추점을 맞추는 편이 나았다. 사실 그게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말이다.
전작에서도 느낀 바 있지만 마야 유타카라는 작가는 사건성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인물에 비중을 두는 스타일로 작품을 쓰는 게 나을 듯 하다.
내내 그렇게 진행해 오다가 책 후반에 이르면 그동안 작가가 읽어왔던 많은 장르소설의 그것처럼 마무리를 지으려 하니 힘 빠지는 결말이 되고 만다.
김전일이나 긴다이치 코스케처럼 충격적인 결말을 밝히며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 듯 한데 마야 유타카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서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보는 게 맞는 듯 하다.